김은영 / 과학칼럼니스트

이번에야말로 잡았다!’ K는 카메라를 끌어안고 뛰면서 속으로 환호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여배우가 자신의 매니저와 밀회를 즐긴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 어언 3개월. 3류 파파라치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K로서는 놓칠 수 없는 건수였다. 스토커로 몰릴 정도로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끝에 만나는 장소와 시간은 알아냈다. 고민하던 K는 큰 마음먹고 통장을 털어 그들의 밀회장소인 맨션 앞 주차장을 빌렸다. 그때부터 K는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래 전 아버지께 물려받은 낡은 수동 필름 카메라 한 대뿐이었다.
커플은 치밀하게 행동하며 ‘그 순간’을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들키지 않도록 차의 위치를 자주 바꿨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눈치 채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로 몸을 피하곤 했다. 스토커로 몰려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K로서는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K에게 기회가 왔다. 노후된 렌즈 관리를 위해 들른 단골 카메라점에서 ‘사람의 눈처럼 옆을 볼 수 있는 최첨단 렌즈’를 발견한 것이다. 크고 아름다운 렌즈는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결정적 순간’을 잡아 사진을 비싸게 팔고 돈을 갚겠다고, 사흘 밤낮을 애걸복걸한 끝에 K는 간신히 렌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제 정면으로 들이대지 않아도 ‘그 순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K는 나무를 찍는 척하며 렌즈의 왼쪽에 있던 그들의 밀회 장면을 잡아냈다! 3개월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2개월 만에 돌아온 집, 먼지가 뽀얗게 쌓인 인화실로 달려 들어간 K는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인화지에 현상액을 부었다. 어떻게 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 결정적 순간만 팔아 치우면, 내 인생은 180도 뒤바뀐다!
“이게 뭐야!” 그곳에는 강한 노출로 하얗게 변색된 맨션만이 찍혀 있었다. 뿌옇게 변한 맨션 입구에는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연사로 열심히 찍어댄 20여 장의 필름, 모두 다.
그 순간 K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상이 있었다. 그들의 밀회에 맞춰 눈부신 빛을 뿌리며 지나가던 검은 세단. 평소라면 카메라에는 절대 잡히지 않았을 빛이었다. 하지만 K의 최첨단 렌즈는, 사람 눈처럼 저 눈부신 빛무리까지 잡아내버렸다. 버릇대로 정면의 광원에만 맞춰 노출 설정을 해둔 것이 패인이었다. K는 사진을 구겨 쥐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 위 글은 미국 일리노이대 재료과학공학과 연구팀의 ‘초소형 인공눈’ 개발 소식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필자소개: 과학칼럼니스트. 서울대 및 동대학원에서 지구시스템과학을 전공하고 현재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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