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음 / 과학평론가

과거 생물학은 실제 존재하는 생물체에 대한 탐구에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생물체를 재설계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합성생물학’이 부상하면서 생물학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합성생물학의 현주소와 이를 둘러싼 논쟁점들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대중과 언론이 한바탕 호들갑을 떤 뒤 잊거나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건들에서 미래를 내다본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좋게 말하면 선각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연을 파괴하는 자다. 모험심 가득한 그 부류들은 이따금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면서 자신들이 본 미래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을 연달아 듣는 쪽은 그것에 무뎌지는 법이다.
 1970년대에 DNA를 조작할 수 있는 유전공학기술이 첫 선을 보였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이 기술로 인해 인류가 창조한 괴물들이 판치는 미래를 보았다. 그 충격은 유전공학기술의 이용을 보류하자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이 인류가 창조한 괴물을 막을 자정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류가 창조한 생물은 새로운 능력을 지닐지 모르지만, 그 능력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자연에서 그러한 부담이 없는 생물과 경쟁하여 이길 수 없다. 이런 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토대로 삼아 모험가들은 유전공학기술 연구에 대한 유예조치를 해제시켰고, 그 뒤로 유전공학은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 DNA 조작기술을 토대로 한 과학기술은 생물학뿐 아니라 화학, 의·약학,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만큼 대중화가 된 덕분에 새로운 연구결과로부터 대중이 받는 충격은 약해져 있다. 1996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 소식이 예기치 않게 논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인간 복제의 가능성과 의미가 깊이 탐구되면서 그 충격도 이제 잦아들었다.

합성생물학, 생명창조의 지평을 넓히다
그에 비해 합성생물학은 일반대중이나 언론으로부터 별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듯하다. 이 분야가 유전공학이 등장했을 때 예시되었던 섬뜩한 미래의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음에도 말이다. 합성생물학의 선두 주자인 크레이그 벤터(J. Craig Venter) 박사는 합성생물학으로 화석연료통 대신 연료를 생산하는 미생물이 담긴 통을 장착한 자동차가 나올 것이며, 덩달아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이미 유전체를 합성하여 빈 세포에 넣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합성 가능한 DNA가닥의 길이를 크게 늘였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한계의 극복사례로 치부될 수도 있다. 염기 수만 개 길이였던 합성의 한계를 수십만 개로 늘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합성생물학의 지평을 더 넓힌 것은 분명하다. 합성생물학이 ‘생물을 모방하거나 생물에게 없는 새로운 기능을 지닌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분야’라고 정의할 때, 이미 분자생물학뿐 아니라 생화학, 공학, 의·약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합성생물학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신약이나 난치병 같은 질병 치료법 개발의 효율을 높이는 데 쓰일 것이다. 에너지와 환경문제 해결에도 활용되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게다가 무생물과 생물 외에 인공생명체와 자연생명체라는 또 하나의 비교 쌍이 등장하면, 우리는 생명을 또 다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합성생물학이 제시하는 미래상
하지만 합성생물학이 자연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끼워 넣은 유전자변형생물도 큰 논란을 야기하는 판인데 아예 마음대로 염기를 바꾸어 새로운 기능을 지니도록 한 합성생물이라니. 환경파괴 사례에서 자주 보았듯이, 여기서도 혜택에 눈이 멀어 피해를 축소시키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행위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토대로 한 이런 우려들이 인간 행위에 한계를 설정하려는 시도를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합성생물학은 어찌 보면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다. 생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역공학을 할 수준에 와 있는가는 논란거리이지만, 어쨌든 합성생물학의 궁극적 목표는 새로운 다윈주의 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으레 그렇듯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합성생물학이 침범하는 것은 사실 다윈주의 진화의 영역이다. 우리는 환경 변화와 생태계 파괴를 통해 그 진화에 개입해왔지만, 합성생물학은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과 관련된 모든 논의와 기존의 생물분류 개념부터 뒤흔들릴 것이다. 새로운 능력을 지닌 침팬지가 아닌 신침팬지도 등장할 수 있을 텐데, 인본주의적인 윤리학이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 사이에 지능이나 성격이 중간에 놓이는 존재들이 연속 스펙트럼처럼 죽 놓이게 되거나, 그들이 인간을 넘어서는 쪽에 놓인다면? 이런 전망이 실현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합성생물학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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