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리 / 영어영문학과 석사과정

인도 태생의 반다나 시바는 주류 과학자가 아니다. 그녀는 과학자이면서 제 3세계의 생태와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활동가이자 급진적 사상가이다. 그래서일까. 시바의 저서인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당대, 2000)은 인문학도인 내가 읽기에도 쉽다.
시바는 과학이 더 이상 ‘중립적인’ 패러다임 위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로 환원하려는 서구과학의 경향이 생명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통렬히 비판하고, ‘다국적 기업의 생물해적질’을 고발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사로부터 시작해 영국의 인클로저를 거쳐 완성되는 토지사유화가 이제는 식민화되지 않은 마지막 영토, 즉 모든 생물체의 내부공간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시바는 이 모든 것이 ‘어머니 대지’를 죽이고 ‘텅 빈 대지’를 등장시킴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본다. 비어 있는 대지 위에서 농업은 더 이상 농부가 아닌, 과학자와 초국적기업들의 수중에 놓인다. 씨 없는 과일을 만들어내는 과학기술 때문에, 과일을 심어 열매를 얻고 그 씨앗을 다시 심는 전통적인 농법은 사라진다. 토착씨앗은 사라지고 농부들은 해마다 새로운 씨앗을 돈 주고 사와야 한다. 생물다양성은 파괴되고 농민의 빈곤화는 가속된다. 시바는 이러한 환경파괴와 사회적 폭력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여성적 원칙을 받아들여, 가부장제에 뿌리를 둔 개발주의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바는 과학이 어떻게 지금의 파편적인 지식으로, 의학·과학 ‘산업’으로 변모할 수 있었는지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진보된 과학기술은 단순히 기술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며 과학을 생명과 생태, 윤리의 차원에서 사고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그녀에게서 나는 과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연약한 것들에 반응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배운다.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삼는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어, 문학적 사유를 통해 보다 통합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도로서 시바의 글을 읽는다. 그렇기에 공학도인 당신에게 그녀의 글을 권한다. 우리는 서로 만나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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