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2.28 금 17:55
특집
정치와 미학, 두 전선에서 싸우는 혁명적 영화김성욱 / 영화평론가
유정란 편집위원  |  yangding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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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승인 2008.06.06  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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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 이후 프랑스 영화인들은 정치와 예술의 결합을 꾀하며 보다 새롭고 급진적인 표현방식을 시도했다. <몽상가들>, <평범한 연인들> 등 68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영화를 통해 그들의 실험정신을 되새겨 본다. <편집자주>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는 1967년에 <중국여인>을 만들면서 마치 도래할 68혁명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밀레탕트 영화(전투적인 정치영화)의 지향점을 당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10월 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난 뒤, 오늘날 미국영화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제국의 한 가운데에서 두 개 내지 세 개의 베트남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미학적으로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만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고다르의 정치적 지향은 체 게바라가 말했던 것처럼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두셋 이상의 베트남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것으로, 영화와 관련해서 보자면 정치와 예술, 내용과 형식에서 두 개의 전선의 투쟁을 벌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투쟁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인 것으로, 영화에 대한 정치적 성찰과 미학의 정치화를 꾀하는 것이다. ‘정치’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질문은 그래서 ‘부르주아적 표상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혁명적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68혁명은 러시아혁명, 아우슈비츠의 비극적 사건과 더불어 영화적 표상과 관련해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 격변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당시의 영화인들은 지극히 급진적으로 영화가 도대체 무엇을 담아낼 수 있고, 또 어떻게 담아내야만 하는가를 질문했다. 이는 시네마테크나 예술영화관에서 청춘을 보낸 전후의 영화애호가들이 스스로 영화적 쾌락에 급제동을 걸고자 했던 미학적·윤리적 질문이기도 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몽상가들>은 파리를 뒤흔든 68혁명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68혁명을 당시 겨울의 파리를 뒤흔든 가장 특별했던 순간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폐관사태를 초래한 이른바 ‘랑글루아 사태’라 불리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인들, 거리로 나서다
1968년 2월 9일, 당시 드골정부의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책임자였던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하기로 결정한 데서 촉발된 이 사태는 고다르, 트뤼포를 위시한 누벨바그리언들과 랑글루아의 추종자들이었던 영화인들이 해임을 반대 하며 카메라를 던지고 거리로 나선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에 빌려준 영화 프린트들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프랑스 정부에 으름장을 놓았고, 찰리 채플린, 구로사와 아키라, 잉마르 베리만, 니콜라스 레이,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프리츠 랑, 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저명한 감독들이 랑글루아의 복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내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그해 파리의 겨울을 뜨겁게 달군 ‘랑글루아 사태’는 프랑스 영화의 역사에서 초미의 스캔들이 되었다. <몽상가들>은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 코미디 감독인가’에 내기를 걸거나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내면서 ‘이 영화의 제목이 뭘까’를 질문하던 시네필 청년들이 어떻게 거리로 나서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영화에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당시 드골정부는 결국 대중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같은 해 4월에 앙리 랑글루아는 복직했지만 결국 영화 논쟁에서 촉발된 ‘랑글루아 사태’는 정치적 비화로 확장되어 같은 해 5월에 꽃핀 68혁명의 점화선이 되었다. 영화에서 젊은이들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외쳤는데 이는 더 많은 권력을 상상력에 부여하려 했던 시도이기도 했다. 베르톨루치는 <몽상가들>을 만들면서 “68년의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검열하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랑하는 것은 모두 다 그 시대의 꿈이자 희망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이 우리에게 상상을 허용치 않았기에 영화애호가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한 정치영화들
68혁명 시기에 제기된 ‘정치영화’는 프랑스의 경우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새로운 영화제작의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가 이전의 안일한 공간을 떠나 거리로 나섰다는 점만이 아니라 ‘작가주의’를 외치며 작가의 개인성에 주목했던 영화인들이 개인의 이름을 버리고 집단화된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집단적 영화제작’의 시도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이 보다 격렬해진 1967년에 본격화되는데 이때 좌안파 영화감독이었던 크리스 마르케를 주축으로 알랭 레네, 아네스 바르다, 윌리엄 클라인, 요리스 이벤스, 클로드 를루슈, 장 뤽 고다르 등의 감독이 영화제작에 참여해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1967)라는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었다.
저항하는 베트남 민중들, 반전 가수로 유명한 톰 팩스턴의 노래, 폭격 장면들, 뉴욕의 반전 평화 시위와 파리의 시위, 인터뷰 등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베트남 민중들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각별함은 그 내용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1967~68년경에 정점을 맞이한 베트남전쟁은 이후 걸프전쟁에서 본격화된 것처럼 텔레비전으로 전해진 최초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영상미디어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은 영화작가들은 영화라는 표현수단을 활용해 집단을 구성하면서, 제국에 대한 비판과 베트남 인민과의 연대를 표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는 여기(프랑스)와 저기(베트남), 개인의 삶과 사회·정치적 문제를 연결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과 정치의 결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크리스 마르케, 장 뤽 고다르 등이 익명적, 집단적으로 혁명을 위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삐라인 <시네트랙트>(1968)와 같은 일련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어졌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신선한 흐름은 1968년을 거치면서 누벨바그의 영화정신을 계승한 실험영화집단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젊은 프랑스 예술후원자인 실비나 부아소나스의 재정적 후원으로 만들어진 ‘잔지바르 영화’는 기존의 주류 영화제작체제의 바깥에서 미니멀한 대본과 즉흥연출로 만들어진 실험영화들로, 필립 가렐은 이러한 ‘잔지바르 영화’의 대표적인 주자였다. 가렐이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과 종종 비교되는 68혁명기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린 <평범한 연인들>을 만든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평범한 연인들>은 당시 가렐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리고 사랑이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 여긴 젊은이들의 혁명과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다. 1968년 5월 파리, 스무 살의 시인 프랑수아는 병역을 거부해 거리에 나서고, 기동대와 격렬한 투쟁을 벌이던 중 조각가를 꿈꾸는 아름다운 여성 릴리와 사랑에 빠진다. 68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들은 꿈과 이상, 혁명의 좌절에 고통스러워하며 파티, 아편, 섹스, 향락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각각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 사랑과 혁명의 교차가 여기에 있다. 가렐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아들 루이스 가렐(그는 <몽상가들>에서 비슷한 역할을 연기했다)에게 68혁명 당시 자신의 역을 맡겼는데, 이는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을 사고하기 위함이다. 
바주카포를 들고 전투에 나선 게릴라들처럼 68혁명 당시 영화인들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이 혁명은 <몽상가들>, <평범한 연인들>에서 보이듯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한국은 이런 68혁명의 동시적 체험을 함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60년대라는 시대에 고도의 특권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영화와 관련해서 보자면 80년대, 90년대,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68혁명은 동시대성을 지닐 수 있다. 연대기적인 68혁명을 떠올리면서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60년대의 영화운동의 기운을 되살리면서 젊음의 사랑과 혁명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여전히 상상력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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