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아 /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석사과정

게데스(1854-1932)는 우리가 흔히 학자들을 분류하는 기준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 게데스가 학구적이기보다는 실천적인 이론가였던 것과 함께, 무엇보다 그 학문과 실천의 반경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뻗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도시계획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나 인생주기로 살펴보자면 이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5~60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도시계획을 통한 국제적·공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더 오랜 시간을 생물학자로 종사했다. 게다가 각종 국제학교와 대안학교를 조직한 교육가로서 기사작위를 받았고 영국 사회학의 기반 마련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다만 이런 사실들은 그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점을 알려준다. 즉 그의 학문적 성과와 실천의 결과물들은 위와 같은 다양한 관심과 연구 노력이 유기적으로 연관됨으로써 형성되었을 것이란 점이다. 실제로 게데스는 도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생물학으로부터 발전시켰고, 조사와 관찰이라는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을 그의 사상과 실천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독립적인 교육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활동을 위한 요소로서 교육을 강조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계획
도시계획은 주로 물리적 기술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언윈, 아버크롬비, 르코르뷔제, 번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건축가나 엔지니어들이 초기 도시계획을 이끌었다. 이들과 후계자 격의 계획가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자연스럽게 도시와 지역의 물리적 개혁이었고, 알다시피 이들의 실천은 수많은 도시들에서 채택되었다. 반면 게데스는 물리적 개혁보다는 사회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보존적 수술(conservative surgery)’이다. 그는 이 개념을 전체 근린보다는 소규모의 공동체에 적용했고, 무엇보다 전통에 대해 강조했다. 즉 사회적 조직으로서 도시와 근린은 계획가의 머리에서 나온 ‘디자인으로 대체’되기보다 본래 가졌던 ‘동력을 재활성화’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술과정에는 주로 엔지니어들에 의해 실행되는 철거를 수반한 도시재개발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정말 필요한 곳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는 방식이 선택된다. 이로써 기존 질서가 보존되고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분명 설계도면에 따라 찍어내는 것보다 어렵고 인내가 필요한 방식일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인도에 머무는 10년간 50여 개 도시에서 게데스가 주로 맞서싸워야 했던 것도 짧은 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정치인과 기술관료의 ‘밀고 새로 까는’ 각종 계획안들이었다.
기존 질서의 보존, 아니 그 고유 원동력으로부터 발전상을 만드는 것은 필수적으로 사회적 현실에 대한 파악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 현재의 계획가들에게 ‘조사’는 기본적인 절차로, 그런 점에서 게데스의 유명한 “계획하기 전에 조사하라”는 말은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게데스가 도서관과 문서에서 벗어나 직접 관찰을 주문한 이유는 그 조사 범주 자체나 ‘결과물로서의 지표’를 넘어선 맥락이었다. 그는 프랑스 지리사회학자 르 플레의 ‘가족-일-장소’ 개념을 발전시켜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적 분석틀을 제시했는데, 이를 통해서도 게데스가 ‘계획’을 지역사회현상에 대한 대응, 즉 사회적 개혁을 위한 실천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분석틀에서 중요한 것은 각 범주들이 연관되어 있으며, 그 상호작용을 통해 지역의 구조와 기능을 형성하고 진화시킨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각 범주들의 특수한 내용을 분절적으로 파악하고 계획하는 것은 완전한 계획이 아니며, 상호연관성을 무시하거나 단절시키는 것 또한 지역의 동력을 훼손하는 계획이 된다.

사회적 개혁으로서의 계획은 결국 게데스가 계획을 운동으로 바라보는 전통의 시발점에 있음을 말해준다. 게데스는 그의 계획활동과 시민교육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대부분의 도시계획이 결국 기술적인 문제로 귀결되는 것과 달리 사실상 그에게 운동은 계획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예를 들어 그는 던펌라인 계획에서 공원을 관리하는 데 지역 보이스카웃이 참여할 것을 제안했는데, 집행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의 단계를 경험하고 다른 프로젝트에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그는 전시회류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는데, 에딘버러에서 시작해 세계 각지를 돌며 가졌던 전시회와 학술교류를 포함한 여름학교 그리고 유명한 ‘전망탑’(왼쪽 그림)이 그것이다. 이러한 박물관과 전시회들은 시민교육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에게 있어 교육이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에 의한 계획과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도시>의 서문에서 게데스는 ‘유토피아’란 바로 도시에서 우리 주위에 놓여 있으며, ‘여기’ 또는 ‘바로 지금’ 시민으로서의 ‘우리에 의해’ 계획되고 산출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게데스의 이상적인 도시
이상적 도시에 대하여 게데스는 ‘상호관계’를 통한 ‘진화’라는 생태주의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상호관계’란 우선 도시와 농촌을 분리하지 않고 지역이라는 통합적인 유기체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며, 내부 발전 메커니즘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종적 상호관계 그리고 지역을 구성하는 요소 간의 횡적 상호관계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게데스는 이를 크게 두 가지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도시와 지역에서 다양한 직업의 발전을 만들어내는 도시유형의 진화적 단계(4단계)로, 각 단계는 다음 단계로 가면서 도시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그 과정에 문명적 쇠퇴가 나타난다. 또 하나의 수준은 town과 city의 양분이다. town은 전형적인 지역에서 자연환경에 대한 일차적 적응으로서 직업과 산업이 형성되며, 따라서 각 지역의 고유성 즉 차이가 반영된다. 구기술의 도시(paleotechnic town)에서 그 ‘차이’는 긍정적인 것으로 전근대사회뿐만 아니라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도 전통과의 연결 속에서 그 차이가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게데스는 바로 이 차이가 결여된 채 town개발이 계획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도시문제로 도시연담화(paleotechnic conurbation)를 지적하였다. 연담도시는 중심도시의 확산에 따라 인접 중소도시가 병합되어 하

나의 거대도시로 형성되는 것을 말하며, 단순히 도시와 도시가 확산에 따라 연접하는 현상과는 다르게 인식되었다. 즉 환경적 한계를 뛰어넘어 확산하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실업과 질병, 범죄 등 구체적 현상의 원인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의 사용에 이은 필연적인 대량생산과 인구증가, 사막화와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town과 반대 지점으로서의 city는 게데스가 다양한 경험과 이론들로부터 조합해낸 이상적인 구성체로 이해할 수 있다. city의 특징 중 하나는 ‘협력적인 계획’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협력적 계획은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본인의 전문 영역을 넘어선 전체 시스템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공간과 기회의 제공으로 가능해진다. 게데스는 이런 방식으로 개개인의 실행과 구상, 나아가 경험과 이론이라는 두 가지 역할 내지 영역을 결합시키려 하였다. 또한 city는 대체에너지를 주요 동력으로 사용함으로써 화석연료의 배제, 채취산업의 쇠퇴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연담도시의 반대 지점에 위치한다 하겠다.
지금 계획분야의 블루오션 중 하나는 ‘도시재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 실현되고 있는 ‘도시재생’은 보존적 수술이 아닌 개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또한 현재의 도시계획은 ‘가족-일-장소’라는 단순한 틀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조사목록이 생겼으나, 그 안에 담긴 사람과 사회는 무시된 채 오직 ‘지표’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 그리고 전문가가 넘치는 21세기에 게데스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확실하다. 게데스는 강의를 청해 머릿속을 흡족하게 채울 수 있는 선생님이라기보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묻고 싶을 때 정신이 번쩍 들 일침을 던져주는 “현재 진행형의 조언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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