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 /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올해로 68혁명 40주년을 맞이했다. 굳이 40주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상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68혁명은 현재를 끊임없이 서사적인 무대 속으로 운반하고 ‘현재’라는 시간을 답파하기 위한 효과적인 탐침으로 구실하여 왔다. 이는 어렵지 않게 그보다 20년의 시차와 함께 등장한 1987년의 6월 항쟁을 상기하는 우리의 기억과 포개진다.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변동을 이끌었던 상상력 가운데 상당 부분이 68혁명으로부터 전송된 것이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물론 다른 국가들의 문화변동을 참조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68혁명은 끝없이 복제되는 사태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68혁명이 동일한 서사적 동심원을 만들어내며 시간적 간격을 증발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씀으로써,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일본이든 아니면 20년 뒤의 한국의 서울이든 서로 다른 지리적 공간을 등가화시키는 역사적 서사의 자장을 식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 시차를 메우고 있는 숱한 비규정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주제를 상연하는 변양들로 환원시키는 논리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매개한 68혁명
나는 68혁명을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이행을 가능케 한 이데올로기적인 분규 혹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자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전환의 ‘소실매개자(vanishing mediator)’로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68혁명에 관한 여러 가지 신화를 가지고 있다. 무력한 사회주의나 교조적인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노동관계는 물론 학교, 병원, 감옥, 가족은 물론 성을 비롯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언어와 정신을 제공하였다는 주장보다 더 끈질기게 68혁명을 따라다니는 말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계급 갈등에서 벗어나 여성, 성정체성, 인종,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출현하였으며, 노동조합과 정당을 통해 조직된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다양한 사회운동이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을 추진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역시 우리에겐 사회학적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자본에 반하는 새로운 운동의 모델을 만들어낸 역사적 분기로 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68세대는 너무 말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품었던 의지 그 자체를 역사적 사태를 표상하는 원리로 삼는다. 푸코를 쫓아 낸시 프레이저가 “훈육자본주의”라고 칭한 전후자본주의와 짝을 맺게할 때 68혁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68혁명과 대응한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 혹은 제국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점으로부터 응시할 때 68혁명은 자본에 반하는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매개하는 역사적인 고리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68혁명의 진원지였던 프랑스에서 사회학자인 뤽 볼탄스키와 이브 시아펠로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란 저작을 출판하였다. 저작의 요점은 68혁명이 제안하고 고창하였던 모든 것은 그에 뒤이어 등장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한 정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책 제목처럼 68정신은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본이 어떻게 68혁명이란 반체제적 비판을 통합하여 자본주의를 재정상화하며, 나아가 그것이 새롭게 자본주의가 자신을 구성하는 경제적 행위에 새로운 인식가능성을 부여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평가·측정·보상하고 자본주의를 더욱 촉진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이들은 19세기 이후 근대성 비판을 특징짓는 것은 ‘총체적 혁명’이란 전망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비판’이었는데, 이는 크게 사회적 비판과 예술적 비판으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68혁명에서는 두 가지 비판이 혼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비판이 주도적인 비판의 방향을 선취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조성하는 언어가 되었다고 바라본다. 자본주의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정신적 구조(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씨테)는 68혁명이 만들어낸 다양한 언어와 정동, 행위의 목록들을 흡수하면서, 이를 자신을 정당화하고 또한 반성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윤리로 조직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대중사회에 대한 거부, 관료제와 권위에 대한 저항, 자율성과 자발성, 개성, 창의성, 독창성의 숭배 등의 다양한 이상은 68혁명의 전부였다. 물론 우리는 그런 말들을 지금 자본가들의 언어에서 듣는다. 이를테면 지난 20년간 전세계 자본주의적 기업 경영의 바이블이었던 탐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을 찾아서>를 들춰보라. 거기에는 68혁명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어휘들이 가득 차 있다. 혼돈과 무질서를 도입하라, 위계를 살해하라, 조직을 버려라 따위의 말들. 물론 이것이 구조조정이니 유연화니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경영 관행을 이끈 계율이었음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68의 ‘반정치적’ 정치: 미적 이성과 경제적 이성의 절합
신경제, 지식기반경제, 무형의 경제, 기호의 경제, 체험의 경제 등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 담론들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것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반성적 규정으로 자본주의를 표상할 수 있었을 뿐이었던 20세기를 생각할 때 어떤 결정적인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보다 나은 혹은 그보다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운운의 주장을 통해 자신을 소극적으로 규정하던 자본의 경제적 표상은 이제 완연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경제법칙이나 질서를 언급하는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 자본이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 데 헤게모니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은 말 그대로 헤게모니적이다. 자본은 자신의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 데 성공하기 위하여 “경제외적 현실”을 자신의 경제 현실에 대한 표상으로 포섭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은 자신이 근본적인 적대적 성격을 가리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을 전체화하여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본과 자본주의를 구분할 수 있다. 자본이 사회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자본주의는 그것을 가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얻게 된 전체화된 사회에 대한 표상일 것이다. 그 때문에 흔히 말하는 것처럼 경제가 별개의 합리성을 가진 자족적인 사회적 공간으로 분화된 것이 자본주의의 주된 특성이라는 주장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경제외적 현실과 분리된 경제를 상상할 수 있는 순간은 오히려 자본이 자신의 위기를 분절하는 순간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환영적인 시각이라 하더라도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각인하는 순간, 즉 모더니즘적인 미적 담론이 등장하는 순간은 또한 자본의 위기가 누출되는 시점이었다. 모더니즘의 출현과 궤를 같이하는 러시아혁명과 그를 잇는 사회주의적 혁명의 발발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68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는 이제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미적 경제니 체험·기호·무형 경제니 하는 새로운 표상적 담론은 곧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다. 그리고 이는 볼탄스키와 시아펠로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68혁명이 꿈꾸었던 것이다.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화해 혹은 미적 이성과 경제적 이성의 아름다운 대위법. 그들은 미적인 것을 통해 경제적인 것을 지양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는 흥미롭게도 자본이 자신의 적대적 성격을 은폐하고 새로운 자본주의를 표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68혁명의 실패는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대립이 자본의 적대가 분절되는 계기라는 점을 잊은 채 그것을 실체화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궁극적으로 잊었던 것은 바로 자본의 적대를 상대하는 것은 정치의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68혁명의 “반정치적” 정치가 도달한 것이 미적 경제라는 새로운 자본주의라 해서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