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신촌 아트레온에서 제 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렸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진행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전세계 30개 국에서 초청된 140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국적, 인종, 나이는 달라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일들, 고민들, 욕망들이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과감하게 스크린에 투사되어 각계각층의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미국 내 불법이주여성노동자들의 법정 투쟁 과정을 기록한 알무데나 카라세도 감독의 다큐멘터리 <메이드 인 L.A.>(2007)는 국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닮은 점이 많아 특히 눈길을 끈다. 1970년대 평화시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열악한 봉제공장 안에서 여성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갈 틈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린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3달러를 받으며 매일 12시간씩, 일주일간 일해서 버는 돈은 고작 200달러. 한국계 의류업체인 ‘포에버 21’은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음에도 여성재봉사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서 소송을 당한다. 영화는 ‘포에버 21’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에 참여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글을 읽을 줄 모르던 루페는 반세계화 운동가로 거듭난다. 루페가 자신처럼 글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단을 가르치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종이박스를 쌓아 만든 ‘자본주의 피라미드’ 최하단에는 노동자들이 위치한다. 중간엔 하청관리기업, 상부엔 ‘포에버 21’ 같은 거대기업이 있다. 막대기로 하단의 박스들을 밀어내자 피라미드가 무너져버린다. 이들은 3년간의 투쟁 끝에 결국 사측으로부터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번 여성영화제는 처음으로 ‘국제’ 영화제로 변모하여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성별과 국가와 연령과 계층을 넘나들며 더 많은 연대를 모색하는 여성영화제.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부장주의·성차별주의 등 전세계 여성들을 억압하는 수많은 피라미드의 기반을 뒤흔들 만큼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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