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규 / 본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과정

1980년대 디지털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은 사회ㆍ경제 분야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새로운 예술형식의 가능성으로 인식되어, 젊은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이미 회화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예술가들에게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1989년 월드와이드웹의 출현은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한 분야로 넷아트 또는 웹아트라는 명칭의 새로운 미술형식이 그 위치를 점유해 나가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미학적으로 검증되고 있는 여러 형식적 특성들, 즉 탈중심화, 비물질성, 복제성, 가상공간, 하이퍼텍스트, 하이퍼링크라는 열려진 미적 형식 체계로서의 가능성들이 탐험되었다.

넷아트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열려진 형식으로서 미적 확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예술형식들이 공간성과 시간성 그리고 유통구조상에서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월드와이드웹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의 단말기를 통해 접속을 원하는 관객에게 감상뿐 아니라 양방향 소통의 장

으로서 제공되기 때문이다.

넷아트의 가장 초기 작업 중 하나로서 올리아 리알리나의 <내 남자친구가 전쟁에서 돌아왔다> (1997)[그림1]는 오직 넷상에서만 존재하고 기능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사용자가 이미지나 텍스트를 클릭하면 점점 하위의 서브 프레임으로 브라우저상의 프레임들이 갈라지면서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서술구조를 지닌다. 그밖에도 네트워크를 이용한 다중 사용자 환경

을 조성하여 사이버스페이스상에 소위 아바타라는 유저의 분신을 창출한 아드리안 제닉과 리사 브레네이스의 <데스크탑 극장> (1997~현재)[그림2]은 웹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에두아르도 칵의 <알려지지 않은 계를 전송하기> (1994~1996)[그림3]는 넷 인터렉티브 설치작업으로 온라인상의 참가자가 웹상의 이미지를 클릭함으로써 어두운 방에 놓인, 흙이 담겨진 받침대 위에 심어진 하나의 씨앗 위에 전구를 이용해 빛을 밝혀 씨앗이 광합성 작용을 하게 만듦으로써, 인터넷이 삶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작업을 창조해냈다. 당시 큐레이터는 인터넷이 씨앗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충분히 씨앗이 발화되어 생명유지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자바플랫폼이나 플래쉬를 이용하여 디지털이미지의 심미적 요소들을 보여주는 소프트

웨어 아 트 역시 넷을 기반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초기 넷아 트가 지니는 형식적 실험의 확장과는 다르다. 또한 이미지 표현의 확장과 다른 여타 디지털 도구들을 병합함으로써 기존 넷아트가 지닌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도구로서 각광받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벤저민 프라이의 <밸런스>(1999)[그림4]는 거대한 데이터 안의 동적인 시각구조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전체 구조 속에 하나의 텍스트가 어떻게 다른 텍스트와 유기적·시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 시각화 작업으로서, 작가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웹상에서 유저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자바플랫폼이라는 기기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새로운 플 랫폼이 개발되었으나, 넷아트는 컴퓨터 시스템의 변화에 따른 소장과 보존ㆍ관리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윈도우 시스템이 95, 98, 2000, XP, Vista로 변화하는 중에 나타나는 시스템 호환성의 문제와 웹브라우저의 버전에 의한 호환성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넷아트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디터 다니엘스가 말한 것처럼 웹은 ‘아래로부터 위로’의 구조를 가진 소통 기능을 상실하고 상업적 전략을 가진 대중매체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웹아트는 더이상 미학적 실험으로서 기능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데이터가 무선으로 전송되고, 초박형의 휴대용 네트워크 기기들의 개발로 인한 새로운 기술적 확장은 웹아트가 지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구조적 변형에 의한 쇠퇴의 측면도 있지만 비디오 아트가 더 이상 매체의 형식적 실험을 그만두고 심미적 속성의 확장을 위한 매체로서 이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웹아트 역시 예술가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하나의 동시대적 도구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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