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위대의 폭력시위 이후 반-중국 정서가 들끓고 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시민을 상대로 버젓이 폭력을 자행하는 시위대의 모습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13억 인구를 기반으로 미래의 경제대국으로 칭송받는 데서 오는 자신감일까.

이 사회는 집회와 시위를 통한 의견 표명의 자유를 인정한다. 그러나 폭력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행위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지지하는 데 대체 보도블록과 스패너가 왜 필요한가. 아마 단순한 성화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그들에겐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절실한 문제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티베트 독립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시위대에 대한 그들의 강한 적개심도 이 애국심에서 연유한다. “남의 나라 땅 문제에 대해 너희들이 왜 왈가왈부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한국 네티즌들도 마찬가지로 “왜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시위를 하느냐”며 응수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중국 유학생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고 선동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번 폭력 사태는 중국이 한국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훼손된 자존심을 감추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는 일부 게시판과 카페를 중심으로 시위를 주동한 중국 유학생 20여 명의 신상정보와 연락처가 나돌고 있기도 하다. 국가가 외교적 이유로 사태 해결에 미적지근하니 ‘개인적 테러’를 감행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스패너만 들지 않았지 중국 시위대의 광신적인 애국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폭력적인 발상이다.

중국시위대가 머릿속으로 한국을 무시했건 안했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 대해서는 법에 의거해 엄정하게 처벌하면 그만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는 사상이 아니라 행위에 대해 소추한다는 원칙이다.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이 사회의 합리성과 법치의 수준이지, 더 많은 애국심이 아니다. 사회구조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억압과 착취를 개인적 폭력행위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전도된 망상에 불과하다. 어떤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과 항거도, 진정한 의미에서 폭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폭력은 사회적 적대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효과일 뿐이다.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등 타자와의 차별적 정체성에 근거한 모든 배타적 이념은 개인과 집단 간에 상상적인 연결 관계를 형성한다. 국가의 자존심이 마치 나의 자존심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강요된 상상적 정체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근대적 개인의 주요한 자질이며, 그러한 개인적 성찰성에 근거하지 않은 선진국은 공허한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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