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이후 주요 보수언론이 ‘좌파 문화권력’을 적출하겠다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은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 “청와대만 탈환했을 뿐, 행정부·국회·문화·학술·미디어·출판·영상·종교계에 파고든 각 분야의 반(反)대한민국 요소들은 여전히 깊고 광범위하게 뿌리내려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문화권력을 되찾아 오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권력만 되찾으면 다시 그들의 천하가 될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한국 보수세력의 자신감을 엿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행보를 보면 이것이 한 보수 언론인의 야무진 몽상만은 아닌 것 같아 자못 우려스럽다. 유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소위 ‘노무현 코드’로 분류된 공공기관과 문화예술계 인사 퇴출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 퇴출을 주장하는 이유가 직무능력의 부족이나 비위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위 ‘친노 코드’라는 것이 문제이다. 코드인사를 비판하면서 정작 코드인사를 행하는 논리적 모순은 차치하더라도, 코드인사를 막기 위해 여야가 협의하여 임기제를 법적으로 도입한 취지를 알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유 장관에겐 코드가 법보다 앞서는 것인가. 심지어 자진해서 나가지 않으면 재임 중 비위사실을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비위사실이 있다면 코드에 맞더라도 내보내는 것이 마땅하며, 그렇지 않다면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상식이다. 책임이 막중한 신임장관이 ‘공갈협박’이 웬 말인가.

“문화예술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습니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문화예술은 근본적으로 진보 아닙니까?” 2006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 장관이 말했던 내용이다. 그의 개인적 신념이 ‘문화 다양성 존중’이라는 현 시대의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러운 한편, 그것이 정치적 지위와 상황에 따라 간단히 폐기되기도 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우리 사회에 ‘좌파 문화권력’이 실재하는 지도 의문이지만, 유 장관의 말처럼 문화예술은 근본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대변한다. 시대착오적인 좌파 문화권력 적출의 ‘홍위병’ 역할은 그만두고, 신임장관으로서 업무 파악에 정진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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