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작년 11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기획한 'Science+Art 2007' 기획전이 열렸다. 이 전시에서는 ‘미시와 거시’, ‘비물리적 공간’, ‘다차원의 세계’, ‘광학적 교란’에 대해 4개의 관에서 70여 점의 작품을 선 보였다. 우리에게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조금 낯설 정도로 신선하다. 그렇지만 그 상호작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두 분야의 접점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

과학과 예술은 재현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재현은 과학과 예술이 상호작용하는데 매우 중요한 접점을 제공한다. 과학 도판, 과학 사진, 기술을 이용한 예술, 의학 삽화 등은 모두 재현을 매개로 하여 과학과 예술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자 그 결과이다. 재현을 매개로 예술이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달 표면의 명암의 경계가 고르지 않다는 것을 관찰한 뒤, 그것이 달 표면에 산과 계곡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었을 때 미술아카데미에서 원근법, 명암법, 스케치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새로운 과학의 언어와 세계관

재현을 둘러싼 상호작용 외에도 과학은 예술에게 새로운 대상, 새로운 재현 매체, 새로운 세계관, 예술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 과학적 비전과 언어를 제공한다. 입체파 화가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나오는 '리만의 공간'이나 '4차원 공간'에 대해 논의했고, 그들의 친구에게 수학을 배운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과학의 언어와 세계관은 기존의 공간 개념과 원근법을 뛰어 넘으려는 그들의 혁명적 시도를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었다. 마르셸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조차’ 발가벗겨진 신부> 역시 4차원에 대한 수학자 푸앵카레와 주프레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과학이 어려워지고 전문화되어 일반 대중이 과학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예술은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예술을 통한 과학의 대중화는 단기적으로는 과학자가 생각한 과학의 이미지와 상이한(심지어 과학자가 보기에는 종종 비과학적이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술을 통해 구현된 과학은 시민들로 하여금 과학의 발전이 야기하는 다양한 결과들을 미리 상상하고 예측하게 한다. 이것은 과학에 대한 무비판적인 찬양과 맹목적인 비판이라는 극단적인 태도를 지양할 수 있게 해주며 장기적으로 과학에 도움이 된다. 유전적으로 변형해 초록색 형광을 내도록 만들어진 토끼나 인간 배아의 발전 단계를 찍은 사진들, 자신의 얼굴에 성형 수술을 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 전시한 기획전은 첨단 과학 시기의 예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변형된 생명체, 배아, 성형수술한 몸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인지, 과학이 위험과 가능성을 함께 제공하는 현 시기에 예술은 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는 과학적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과학자들이 예술작품을 자신의 과학에 응용하거나 예술작품에서 받은 영감 때문에 안 풀리던 방정식을 해결하는 식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술적 상상력은 전체 작품 속에서 부분과 부분 사이의 조화와 부분과 전체의 조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이 각각의 요소들의 관계에 대한 시각화를 꾀하며, 이성과 감성 모두를 사용한 직관을 통해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도모한다. 그리고 관련이 없어 보이던 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련을 만들거나 비슷하다고 생각된 것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것 사이에 친화성을 찾으며,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평가 하는가 하면, 몇 가지 사례의 연속에서 패턴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사실이나 법칙을 발견하고 또 이렇게 발견한 것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들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과학자도 공식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예술에 대한 이해는 과학을 형식 논리나 수식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위대한 업적을 냈던 과학자일수록 직관, 시각화, 상상력, 감성, 즐거움, 이해, ‘자연과 하나 됨’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사고와 실행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접근은 진정한 과학적 창의성을 고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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