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지난 해 2천억 원대의 이익을 창출한 뮤지컬산업은 국내 공연계 전체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유망 문화콘텐츠로 떠올랐다. 비보이뮤지컬, 랩뮤지컬 등 스펙트럼이 다채로워진 뮤지컬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블루칩은 단연 ‘무비컬(Movical)’이다. 무비와 뮤지컬이 합성된 신조어 ‘무비컬’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의 원작을 각색해 춤과 노래가 결합된 뮤지컬 형식으로 재현한 공연극’이다. 무비컬은 흥행영화의 인지도를 이용해 투자 위험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양산된 기획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외국산 뮤지컬에 맞서는 무비컬

무비컬 열풍의 효시가 된 것은 2004년 임순례 감독의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연출 이원종)다. 이어서 지난 해 <싱글즈>와 <밴디트> 등이 원작의 정서 전달과 캐릭터의 극적 재현에 성공해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음으로써 ‘무비컬’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제 무비컬 공연은 정초에 공연된 <라디오스타>를 필두로 하여 창작뮤지컬 중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열풍이다. 올해 공연계에서 무비컬은 그 연쇄반응인 창작뮤지컬 열풍과 함께 본격적인 대세로 굳혀갈 것으로 전망된다. 무비컬은 초창기 실험단계를 지나 돌풍을 일으킬 뮤지컬계의 총아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자국의 창작콘텐츠인 무비컬보다 외국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호한다. 집계에 의하면 무비컬 제작 열풍으로 지난 해 무대에 160여 편의 작품 중 순수창작뮤지컬의 비율은 65%로 증가했으나, 시장점유율은 15%를 넘지 못했다. 뮤지컬시장의 자금흐름은 아직까지 해외콘텐츠가 장악하고 있다. 안정적인 상환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대형공연의 레테르효과에 기대는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비컬은 외국 공연팀의 투어와 외국작품의 판권계약경쟁으로 인해 거품이 붙은 관람료의 해외유출을 막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라이선스 작품이 대극장 공연을 선호하는 반면, 창작뮤지컬인 무비컬은 70%의 공연이 소극장 공연을 지향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무비컬의 또 다른 장점은 우리 뮤지컬 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무비컬이 이익창출을 위한 문화상품이기는 하지만 ‘장르 간의 혼성’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예술창작방법론과 창작뮤지컬의 소스를 확대해준다. 이러한 ‘장르교배’ 현상은 영화에서 이루어진 창작의 묘미를 강탈하는 행위라 비판되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각 영상예술과 무대예술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언어와 뮤지컬언어 사이에서 ‘창조적 번역’을 이뤄내야 한다.

과도기의 무비컬, 제2의 창작이 되어야

시공의 연출이 자유롭고 편집효과가 현란한 영화의 표현기법은 음악적 공감과 화려한 현장성을 중시하는 뮤지컬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현재 공연 중인 무비컬 <라디오스타>는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 긴장감이 반감되는 등 영화의 특성을 극복 못한 연출”(<더 뮤지컬> 편집장 박병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독창적인 연출법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무비컬 산업은 뮤지컬장르만의 미학적 아우라 및 순수창작뮤지컬만의 새로운 스토리창작 가능성을 포기해 ‘영화의 복제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비컬은 ‘순수창작뮤지컬의 장기적 발전’에 있어서 오히려 저해요소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대상 영화의 취사선택과 각색방식 개발은 무비컬의 존재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최우선적 과제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방법론의 정립을 토대로 철저한 ‘사전기획’이 이뤄져야 한다. 뮤지컬과 영화가 동시에 기획된다면 눈앞의 이익창출에 급급해 졸속으로 복제품을 양산해낼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소재 개발과 전문작가 육성 문제도 시급하다. 창작인프라를 확보하게 되면 스타 캐스팅 경쟁에 매달리는 행태나 로맨틱 코미디에 편중하여 무비컬을 제작하는 관행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뮤지컬 산업은 매년 20%라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대중적 인지도와 수요기반, 예산자본을 확보해가고 있다. 현재 무비컬은 이 뮤지컬 열풍의 중심에 서 있으나 아직은 검증 과정에 있다. 무비컬이 확고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실험정신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창조적 시도’를 전제로 한 무비컬의 성장은 창작뮤지컬의 지평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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