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 /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ㆍ‘새로운 진보정당운동’ 회원

■ 민노당 분당파를 위시한 ‘새로운 진보정당’과 노동자계급 중심의 ‘변혁적 진보정당’이 최근 좌파신당 창당 흐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궁극적으로 진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창당운동 간에 서로 다른 입장을 비교해봄으로써, 좌파신당이 나아가야 할 ‘같지만 다른’ 지향점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지난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참패한 뒤, 민주노동당의 붕괴가 시작됐다. 그와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터져나왔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흐름은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진보신당 건설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붕괴와 진보신당 운동의 등장은 결코 진보‘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세력 전체의 재구성의 신호탄이다. 한국 진보운동의 빅뱅이 시작된 것이다.

종북주의, 민주노총에 대한 의존을 버려라

왜 그러한가. 지난 대선에서 심판을 받은 것은 단지 민주노동당만이 아니었다. 87년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세력이 심판을 받았다. 개혁과 진보를 자임하던 세력이 스스로를 개혁하고 진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어떤 미래도 없다는 것이 대중의 선고였다. 정당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 변해야 하고, 시민사회운동이 변해야 한다. 모두 바뀌어야 한다.

재구성’이란 결국 뭔가를 버리고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럼 우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남한의 대중이 아니라 북한 국가사회주의를 중심에 두는 낡은 시각이다. 이것이 바로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 안에서 논란이 된 ‘종북주의’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주체사상의 문제다. 북한 사회를 총체적 실패로 몰아넣은 그 사상을 여전히 ‘진보’의 이름으로 신봉하는 자들이 진보운동 안에 존재한다. 20세기의 이러한 낡은 유산과는 이제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버려야 할 또 다른 짐은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들인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품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계급 내에서 고립되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면 진보정당이 나서서 노동운동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헌데 과거 민주노동당은 선거 때 돈과 표를 모으기 위해 민주노총에 기대기만 했다. 행여 이런 의존 관계에 금이라도 갈까봐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보고도 눈을 감거나 비판을 삼갔다. 그 결과 노동운동의 발전은 계속 지체되고 그 사회적 고립은 더욱 심각해졌다.

진보신당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족쇄를 끊고 진보정당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럼 과연 무엇을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가. 첫 번째는 21세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진보의 내용이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강령이 천명했던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을 계속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21세기 진보의 ‘전부’일 수는 없다.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등 새로운 대안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것을 흔히 ‘적색’(전통 좌파의 상징색)과 ‘녹색’(신좌파의 상징색)의 연대, 즉 적록연대라고 표현하곤 한다. 진보신당은 바로 이 적록연대의 당이어야 한다.

진보신당의 또 다른 과제는 진보운동을 밑에서부터 튼튼히 재건하는 일이다. 지난 4년간의 민주노동당 의정 활동이 남긴 최대 교훈은 무엇인가. 노동현장과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지 않고서는 국회의원 몇 명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냉엄한 진실이다. 지금부터 진보 세력이 해야 할 일은 새삼 운동의 저변을 다지는 일, 즉 노동현장과 지역사회에 진지를 튼튼히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이제 민주노총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노동자 당원을 손발로 삼아 새로운 노동운동을 개척하는 데 나서야 한다.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역은 비정규직-중소기업-여성 노동자 그리고 ‘88만원 세대’일 것이다. 또한 중앙정치와 국회의원 선거에 목매달았던 과거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이제는 지방정치와 지역사회운동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8대 총선보다도 오히려 2010년 지방선거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도전과 반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진보신당이 만약 이러한 과제들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우리는 이명박 정부 중반 언젠가이 진보신당을 무기로 진보세력의 재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진보’는 이제까지의 상투적인 얼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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