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와 문화

 백승국 /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소쉬르는 “사회적 삶 속에서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인 기호학”의 탄생을 주장했다. 소쉬르가 세상의 기호를 논리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제안한 기호학은 20세기 유럽 인문과학의 이론적 고찰과 방법론 구축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각인시킨 인문학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게임콘텐츠란 가상공간 속 기표와 기의의 의미작용으로 생성된 연쇄적 기호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예술적인 요소와 테크놀로지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인터랙티브 콘텐츠이다. 예컨대 게임콘텐츠는 가상공간 속 비주얼 이미지를 구성하는 상상적 기표와 기의의 두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연쇄적 기호로 구성된 콘텐츠이다. 게임콘텐츠의 기호는 물리적 실체로서 게임 공간의 시청각적 요소를 표현하는 상상적 기표와 게이머의 체험으로 부여되는 기의로 조합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게임콘텐츠의 의미작용은 게임공간에 배치된 시청각적 요소인 상상적 기표들의 구조적인 배열과 관계를 통해 기호내용인 기의가 연결되는 과정이다. 게임 공간 속 기호표현인 기표와 기호내용인 기의의 조합인 의미작용의 결과로 기호의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콘텐츠의 가상공간에 배치된 상상적 기표의 개념은 명시적 의미 차원에서의 기표가 아니라 함축적 의미 차원에서의 기표를 의미한다.

게임디자인과 기호학적 개념
창작영역에서 게임을 구상하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상상적 기표는 시뮬레이션 오브제로서 게이머가 가상공간에서 지각하는 추상적 사물들을 의미한다.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성을 구상하는 게임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게임콘텐츠는 상상적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창조되는 열 번째 예술이다. 게임디자이너는 게임구상 전략에 따라 기표들을 게임공간에 배치한다. 게이머는 계열체 차원에서 캐릭터, 아이템 등과 같은 상상적 기표를 선택하여 의미를 부여하며 다양한 기호를 생성하게 된다. 게임 공간 속에 배치된 상상적 기표들은 게이머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취사선택되어 통합체 차원에서 재배치되어 기호를 생성하여 게임의 스토리를 구축하게 된다. 즉 게임디자이너의 상상적 기표와 기의의 의미작용으로 생성된 기호들의 연쇄적 조합으로 구축되는 것이 게임콘텐츠이다. 게이머는 가상공간에서 기표들을 선택하여 게임의 유희성을 획득하는 능동적인 의미작용을 시작한다.
따라서 게임콘텐츠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상상적 기표만을 배치한 것은 아니다. 게이머의 관심사는 자신이 선택한 상상적 기표를 기반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의미작용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자신의 능동적 의미작용 활동을 통해 가상공간 속의 배우가 되어 자유도 높은 몰입의 감흥을 체험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상적 기표의 개념은 상호작용성이 작동하는 스토리를 구상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게임을 창조하는 게임디자이너에게 상상적 기표는 게임의 가상공간 속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구상하는 디자이너는 게임의 역사적 혹은 신화적 모티브, 등장인물의 설정, 게이머의 공간행로, 게임의 유희적 메커니즘(게임성) 등을 실현하기 위한 상상적 기표를 미장센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상상적 기표는 게임콘텐츠의 인지공학을 구체화시키는 매개 역할을 수행하는 시뮬레이션 오브제들이다. 게임디자이너는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가상공간 속에 존재하는 ‘상상적 기표 혹은 시뮬레이션 오브제’를 구상하는 것이다. 게임 디자이너가 구상한 상상적 기표는 게이머의 감각시스템을 자극하는 시지각적 속성을 수반하고 있으며,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행동적 속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게임디자이너는 상상적 기표를 구상하여 총체적인 게임의 몰입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호학적 차원에서 게임콘텐츠 유저의 몰입은 감각시스템 차원과 내러티브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게이머의 몰입은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면서 몰입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게이머의 몰입에는 감각시스템 차원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인터페이스가 유도하는 기술적 몰입과 내러티브 차원에서 서사구조가 유발시키는 상상적 몰입이 있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게이머의 몰입은 게이머의 감각시스템을 자극하는 시청각적 요소와 게임 규칙 그리고 서사성을 창조하는 서사구조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창출되는 절대적 감흥이다. 게임의 몰입구조를 연구하는 클로드 바이블레는 영화의 감정 몰입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영화 관람자가 심리학적인 긴장과 이완의 반복적인 연속에 의해서 영화의 서사구조에 몰입하게 된다고 제안한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감상자의 심리적 요인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미장센을 연출하는 것이다. 감상자의 장기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가 영화 속에 배치된 기호들의 자극으로 감정적 기억과 연관된다. 따라서 감상자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 그가 기억하고 있던 기호들이 시나리오에 의해서 재현되어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게임레벨 디자인과 서사프로그램
내러티브 차원에서 게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는 영화 감상자의 지각심리 도식과는 다른 감정행로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게이머는 자신의 결정과 선택을 중심으로 게임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적극적 참여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즉 심리학적인 긴장과 이완의 원칙들이 스토리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가 내리는 선택을 기반으로 미션의 성공과 실패 등의 감정적 리듬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기호학적 차원에서 게임의 가상공간은 스토리의 일직선상 줄거리를 따라서는 구축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이다. 선형적이고 정형화된 스토리라인으로 게임의 가상공간 속에 존재하는 상상적 기표를 묘사할 수 없다. 따라서 게임의 스토리는 가상공간 속 상상적 기표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상공간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게이머가 각각의 미션과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게임 레벨 시나리오를 구상해야한다. 즉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실행해야 한다. 게임에서 레벨은 게이머의 상호작용적 활동이 구체화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의 하나이다. 게이머가 하나의 레벨을 수행한 후 다음 레벨로 통과할 수 있으므로 레벨은 하나의 목표와 연결되어 있다.
기호학의 내러티브 차원에서 게임의 레벨은 ‘서사 프로그램’이다. 게임의 주체인 게이머가 가치대상인 아이템을 획득 혹은 몬스터를 제거하는 등 목표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임의 서사프로그램이란 ‘게이머의 상태가 게임행위를 통해 변화되는 과정을 시나리오화한 것’으로 게이머는 서사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 상상적 몰입에 빠져들게 만드는 기호학의 내러티브 스토리텔링 장치이다. 비디오 게임 장르 중에서 모험 게임은 서사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장르로서 레벨의 서사프로그램 구축이 중요하다. 게임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하나의 레벨이란 연속적인 모험의 집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속적으로 부여되는 모험시리즈를 해결하기 위해 게이머는 탐험의 목표를 이해하고, 장애물을 탐색하며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탐험의 순서는 완전히 정해져 있지 않고, 게이머는 동시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탐험들에 맞부딪힐 수 있다. 게이머는 하나의 레벨에서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키우고, 게이머는 가치대상을 획득하게 되어 다음 레벨을 실행하게 된다.

예컨대 유럽 게이머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모험 게임 <Grand Theft Auto>에서 게이머는 여러 갱들이 지배하고 있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작은 깡패 역할을 구현한다. 각 레벨에서 게이머는 자신의 주어진 서사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하여 도시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자동차를 훔쳐야만 한다. 결국 하나의 레벨은 다양한 서사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이머는 서사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다음 레벨로 진입하게 된다.
소쉬르의 기호학적 개념들이 21세기 뉴미디어의 핵심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는 게임콘텐츠를 연구하는 학제적 이론과 방법론으로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기호학의 학제적 접근이 열 번째 예술인 뉴미디어의 게임콘텐츠를 독립된 학문으로써 위상을 갖게 하고, 게임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공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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