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의 날인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정면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간강사다. 그는 아침 6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영어 학원으로 향한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경쟁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일은 안성에 있는 H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날이다. 9시 30분, 학생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다. 그리고 연구 조교로 일하고 있는 문과대 6층 교수연구실에 잠깐 들러 강의 준비를 한다. 12시, 안성에 갈 준비를 마치고 터미널로 향한다. 친절하게도 H대학에서는 시간당 4만원인 강좌를 두 개나 열어 주었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정확히 80만원. 요즘 갑자기 유행어가 된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반영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80만원은 생활비와 책값으로 곧 다 빠져나간다고 불평하는 그에게 책을 덜 사보면 될 것이라고 충고할 수도 있겠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명색이 대학 강사인 그에겐 너무 가혹한 게 아닐지. 어찌됐든 그는 안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그 안에서 못 다한 강의 준비를 보완한다. 머릿속은 내일 수업 시간에 발제문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8개월 동안 연체된 건강보험비를 한 달 더 미루자는 생각들로 휘몰아치고 있다.
H대학에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중앙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곤란하다. 수업시간 전까지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2시, 그는 점심을 거른 채 강의에 임한다. 강의는 박사논문 전공 분야와 그다지 관계없는 분야이지만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인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보따리장수에게 들어오는 강의들을 입맛대로 골라내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8시에 야간 대학원 강의까지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싣는다. 버스에서 그는 부지런히 계산해 본다. 이제 곧 방학인데, 그는 계절학기 강의 자리를 얻지 못했다. 방학 동안 돈을 벌까공부를 할까 고민하다가 계절학기 강의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출강하는 대학 측의 행정상 실수 때문에 못하게 생겼다. 일단 카드로 쓰고, 연구비 50만원 들어오는 것으로 나중에 채워넣으면 되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얼마 전에 운 좋게 프로젝트를 따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방학이 되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도착하면 10시. 오늘도 밤을 새서 발제 준비를 하게 됐다. ‘도대체 밤을 새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하는 그에게 세상은 부지런한 젊은이들의 성공신화를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30분, 그는 다시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여경아 편집위원  kyj515@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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