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테러리즘

미니 / 국제연대운동 단체 ‘경계를 넘어’ 활동가

1970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요르단 정부가 요르단 안에 있던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을 학살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에서 파키스탄이 요르단을 지원했다. 또 그 일에 앞장섰던 지아 울 하크 장군은 1977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파키스탄 정부를 장악했다. 지아 울 하크가 권력을 잡자 이슬람법인 샤리아가 적용되면서 태형과 교수형이 제도화되는 등 파키스탄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언제나 그렇듯이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보다는 자신의 패권을 위한 도구로써 파키스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파키스탄의 역할이다. 1978년 파키스탄 서북쪽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인민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이 때부터 미국은 파키스탄을 이용해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을 제압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주된 방법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돈과 무기를 지원해 소련에 맞서 싸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미국과 파키스탄 정부에게 골칫거리가 된- 마드라사(이슬람학교)와 탈레반 등이 성장한다. 그리고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도록 지원했던 것도 베나지르 부토가 이끌던 파키스탄 정부였다.
하지만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얼마 되지 않아 냉전도 끝이 난다. 그리고 그동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미국의 파키스탄 군부와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지원도 급격히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게다가 상황이 바뀌어 1998년에는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리스트 훈련소를 파괴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고, 2001년에는 9.11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한다. 하지만 미국의 침공은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은 오히려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에게 전투에서조차 밀리는 꼴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저항하는 조직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을 오가며 작전을 벌이고 있다. 국가를 중심으로 보면 국경을 오가는 행위이지만 역사와 문화로 보면 예전부터 이 곳은 파슈툰인들이 살던 지역으로 국경이라는 분리선 없이 오가던 지역이었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탈레반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국경 너머 파키스탄 쪽까지 공격하고 싶었을 것이 불 보듯 훤하다.
그런데 파키스탄 쪽까지 공격한다는 것은 이라크에 이어 또 하나의 전선을 만든다는 것이고, 파키스탄인들의 엄청난 반발과 저항은 눈에 보듯 뻔한 것이다. 그래서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탈레반과 관련된 세력을 제압하라고 요구도 하고, 협박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샤라프로서도 어려운 것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을 지원해서 가뜩이나 민중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데, 섣불리 군사작전을 벌였다가는 자신의 권력이 더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탈레반과 이슬람주의자들의 성장과정에서 파키스탄군이 직접 개입을 했었고, 지금도 군 내부에는 이슬람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세력이 상당수 있어 이도 저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붉은 사원 이후
1999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2001년 직접 대통령 자리에 오른 무샤라프는 집권 기간 내내 권력독점, 부정부패,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 등을 일삼았다. 그 결과는 당연히 민중들의 거센 반발로 이어졌다. 그러다 2007년 7월 파키스탄 정부가 ‘침묵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붉은 사원(랄 마스지드)’을 공격해 100여 명의 학생과 군인 등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붉은 사원은 이슬람 사원과 신학교가 함께 있는 곳으로 파키스탄 전역에 퍼져 있는 이슬람 신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붉은 사원에 대한 공격의 이유로 파키스탄 정부는 이들이 사용하고 있던 시설들이 불법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의 성장을 지원했고, 오랜 세월 불법 건물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불법’을 내세우며 공격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붉은 사원에 대한 공격의 이유는 미국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탈레반과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압하라는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요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었는데, ‘봐라, 우리도 할 수 있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도 미국의 고민은 계속된다. 무샤라프는 지난 10월,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의회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일반 민중들에게 무샤라프의 인기가 아주 바닥일 뿐만 아니라, 무샤라프 정권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대테러 전쟁을 비롯해 미국의 패권정책에 잘 협조해 왔던 무샤라프를 제거하고 다른 세력을 내세우자니 그 대안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샤라프가 순순히 물러나지도 않을 것이며, 파키스탄에는 핵무기까지 있으니 미국으로써는 더욱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무샤라프도 그동안 가지고 있던 참모총장직을 측근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대통령 자리에만 앉기로 하였다. 즉 무샤라프와 부토 사이에 권력을 분점하게 하여 정치 구조에 일정 정도 변화를 주고, 이를 통해 민중들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미국의 정치적 이익도 계속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집권 시절 온갖 부정부패로 문제를 일으킨 뒤 망명길에 올랐던 부토가 지난 10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귀국한 것이다. 그리고 11월 3일, 무샤라프가 또다시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정치적 행동과 방송 등을 금지시키고 수천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을 체포하였다. 그러면서 무샤라프는 12월 16일에 비상사태를 해제하고 2008년 총선을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총선이 얼마나 제대로 치러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총선 전에 수많은 정치인과 양심수에 대한 석방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파키스탄은 미국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앞으로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이란과의 한판 대결을 생각해서라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파키스탄이 반드시 ‘안정’되어야 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샤라프 정권이 권력분점을 요구하는 부토, 샤리프 진영 등과의 투쟁, 이슬람주의자들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인 북서부 지역 정치 세력들과의 투쟁, 민주주의와 인권,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민중들과의 투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파키스탄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미국의 패권을 위한 군사기지로써의 역할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중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파키스탄이 어디로 갈지 계속 지켜봐야 하겠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