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홍경한 /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필자는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들을 찾을 때마다 불쾌감이 들곤 한다. 겉과 속이 너무나 달라 이곳이 과연 대관을 전문으로 하는 상업화랑인지 알찬 기획으로 한국미술의 발전성을 담보해야 할 국공립미술관인지 도무지 그 정체성을 가늠하기 힘든 경우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논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하며 미술사를 가로지르는 미학적 담론을 형성해야 할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고 장삿속에 눈이 먼 국공립 미술관들의 행태를 보면, 한심하다 못해 제정신인가 라는 의문마저 절로 든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국공립미술관들의 다수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유추하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미술의 발전상을 제시하기는커녕, 외국 미술관에서 빌려온 작품들을 가득 채워 놓은 후 치적을 자랑하는 천박한 ‘스노비즘’에 빠져 있다. 돈을 탐하는 일부 언론이나 기획사들과 손잡고선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인기가 있다 싶은 화파나 작가들의 작품을 빌려와 ‘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전시’라며 혹세무민하고, 관객들은 정말 그런 전시를 보지 않으면 문화적 교양이 떨어진다고 여기는지 시장바닥 같은 전시장을 찾는다. ‘죽기 전에 꼭 봐야한다’는 말의 이면에 숨어 있는 ‘죽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속내를 의심하지 않은 채 말이다.

실제로 ‘대관 블록버스터 전시’를 사랑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은 지난해와 올해에만 무려 14개에 달하는 해외 유명 미술관 소장품 전시에 안방을 내줬고, 그 대가로 가만히 앉아서 커다란 이익을 창출해 왔다. 2004년 <샤갈 전>으로 대박을 터뜨린 이후 ‘돈 맛’을 알아버린 서울시립미술관은 문화의 자존심이라는 명예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특별기획전’이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 대관전시를 지속해 왔다. 또한 그 명단에는 <마티스>, <로버트 인디에나>, <피카소>, <로베르 콩바스>,  <마그리트>, <모네>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더구나 내년 2월까지 열리는 <반 고흐 전>을 비롯해 내년에도 서너 개의 초대형 대관 전시가 대기 중이어서 대관 전문 미술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블록버스터의 전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예술의 전당 역시 ‘아트페어(미술작품을 팔기 위한 장터)’ 전문 미술관이라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해외 대관전을 고집해 왔다.  지난 2004년 <서양미술 400년 전>을 필두로 <대영박물관 한국 전>이 열렸고,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 전>, <르네상스-바로크 회화 걸작 전>, <인상파 거장 전>,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오르세 미술관 한국 전> 등 2006, 7년에만 6개의 대형전시를 줄줄이 내걸었다. 여기에 입이라도 맞췄는지 시립미술관과 동일한 시기인 올해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을 열 계획에 있어 끼리끼리 전시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이 개최한 전시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안그렇겠지’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현대미술의 빠른 유속을 들여다 보고, 한국미술의 가능성을 재점검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는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조차 존립의 본질과는 별 관계없는 화려한 해외전을 연이어 열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명작을 보는 것도 좋고 위대한 작가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문제는 국공립미술관들이 민간자본으로 유치되곤 하는 이런 전시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대관에만 치중하다보니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시의 폭이 매우 협소해지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읽지 못해 문화정체현상을 빚게 된다. 그렇잖아도 전시장 얻기가 힘들어진 국내 작가들의 전시기회를 더욱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도출시키고 있음은 물론, 학예사들이 기획사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이냐는 자조 섞인 불만이 큐레이터 제도의 안착을 어렵게 만들지만 개선의 노력은 거의 없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행해지는 자체기획전이란 건 당연히 ‘땜빵’ 즉, 시간 때우기 식 전시일 수밖에 없다.
기획사들이 해야 할 일을 상업화랑도 아닌 미술관이 대신하는 직무유기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는 우리나라 미술의 힘과 역량을 도모하는 것보다 외국 유명 작가들의 망령을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국공립미술관들의 시각, 아니 소급하여 책임운영기관으로 바뀌면서 실적에 연연하는 일부 미술관장들의 마인드 결여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능력있는 예술가를 발굴하여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고 우리의 미술로 문화향유층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할 본연의 자세를 저버리고 수준 낮은 스노비즘에 젖어 돈벌이에 급급한 국공립미술관들, 일부 관장들을 마주하는 건 솔직히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언제 정신을 차릴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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