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오 / 한국화학연구원 융합바이오센터 선임연구원

195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였던 리처드 파인만은 그의 강연에서 처음 ‘나노’ 의 세계에 대해 언급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파인만의 사고의 속도보다는 느렸지만 1980년대 이후 전자현미경 및 공정기술이 발달하면서 실제로 나노의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근간이 마련되었다. 본 글에서는 나노기술의 최첨단인 꿈의 물질, 탄소 나노튜브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단일겹 탄소 나노튜브의 존재는 1993년 스미오 이지마박사와 돈 베튠박사 그룹에 의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라펜이라고 불리우는 탄소 그물망을 말아놓은 형태를 갖는 탄소 나노튜브는 그 형태의 완벽함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상식을 뛰어넘는 우수한 성질로 인해 많은 연구자와 기업가들에게 꿈의 물질로 간주되어 왔다.
우선 탄소 나노튜브의 뛰어난 탄성 및 강도를 이용하려는 연구에서는 탄소 나노튜브 복합체 케이블이 지구로부터 우주의 정류장에 보급품을 공급할 수 있는 ‘Space elevator’로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철보다 10배 이상의 강도를 가지면서 현재는 밀리미터에서 센티미터를 넘는 나노튜브의 성장도 가능한 만큼, 이의 실현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나노튜브 복합체는 이외에도 전자파의 우수한 차폐 재료로 이용될 수 있고, 복합체 필름을 이용하여 투명전극을 만들거나 플라스틱 전자소자 재료의 부품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탄소 나노튜브가 갖는 우수한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여 이를 나노전자소자, 또는 전자소자를 근간으로 하는 다양한 센서로 개발될 수 있다. 1998년 이후에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트랜지스터 및 트랜지스터 어레이(그림1)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이를 이용하여 감도가 기존에 개발된 센서들과는 크게 차별되는 센서의 개발이 보고되었다. 주로 고온에서 작동되었던 금속 산화물계의 센서들을 대체할 수 있는 탄소 나노튜브 기반의 상온작동 가스센서들이 보고되고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우수한 감도를 갖는 나노튜브 센서를 진단용, 또는 의학용으로 개발하여 암의 초기단계에 발생하는 극미량의 종양표지자들을 검출, 조기 암진단에 이용하거나, 빠르고 신속하게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센서에 대한 연구도 지속되고 있는 추세이다.

현실 가능한 스파이더맨
이 외에도,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새로운 섬유 등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최근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하여 기존에 개발된 것들에 비해 월등한 특성을 갖는 도마뱀 발을 개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었다. 스파이더맨처럼, 게코도마뱀이 벽과 천장을 기어오를 수 있는 것은 도마뱀 발바닥에 있는 촘촘한 나노크기의 섬유 덕택인데,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하여 그 도마뱀 발바닥의 섬유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것이다(그림2). 또한 탄소 나노튜브를 나노크기의 ‘캐리어’로 연구하고 있는 그룹들도 있다. 스탠포드 대학 등에서는 탄소 나노튜브의 표면에 암세포와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항체를 고정화하여 결합하도록 한 후, 적외선을 흡수하는 나노튜브의 성질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암세포만을 파괴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는 탄소 나노튜브가 세포내에 비교적 손쉽게 투입될 수 있다는 점과 적외선을 흡수하는 나노튜브의 특성을 결합시킨 것으로 이 외에도 탄소 나노튜브에 항암제 등의 약물을 고정화하여 원하는 세포에만 약물을 주입하는 ‘Smart drug’으로 개발하려는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Actuator, Resonator 등에 대한 연구도 계속 진행 중에 있으니 과연 탄소 나노튜브는 현대 나노기술의 꽃이요, 미래 나노기술의 꿈이라고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탄소 나노튜브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다. 탄소 나노튜브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라펜을 말아서 만든 형태를 갖는데, 이때 말아주는 각도에 따라 금속성을 띠기도 하고 또는 반도체 성질을 띠기도 한다. 문제는 성장과정에서 이와 같은 금속성 나노튜브와 반도체성 나노튜브를 선별해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소자로서의 탄소 나노튜브 응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반도체 나노튜브, 그 중에서도 전기적 특성이 균일한 나노튜브들을 필요로 하며 도선이나 전도성 필름을 위해서는 금속성 나노튜브가 아무래도 유리하다. 현재로서는 그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파우더 상태의 나노튜브에서 금속성 나노튜브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고 이렇게 얻어진 튜브들을 자기조립(일종의 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유기 저분자 물질을 이용하여 나노구조물들을 원하는 자리에 위치시키는 기술)하여 소자로 개발하거나, 또는 기판에 직접 여러 개의 나노튜브를 평행하게 성장시킨 후, 화학적·전기적 처리 방법을 통해 금속성 나노튜브만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파인만이 예측했듯이 물질을 원자수준에서 제어할 수 있는, 정말로 원하는 특성을 갖는 나노튜브를 원하는 위치에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1960년대, 많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60년대에 사용된 입덧을 방지하려고 처방된 약물로 부작용으로 인해 팔·다리가 없는 아이들이 탄생했다)의 주범이었던 탈리도마이드가 신생혈관을 억제하는 그 특이한 성질로 인해 항암제로 탈바꿈하듯이, 우리의 답도 아마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곳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필연으로 찾아오는 법, 준비된 우리들의 미래, 여러분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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