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홍경한 /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권력지향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신성이 ‘선’이라고 자위하며 장래의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방법의 전부를 동원할 뿐 아니라, 권력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존속, 의존, 확대하려는 본성에 기대곤 한다. 이는 사회·정치·경제·문화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집단의 권력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며, 소급하여 우리나라 미술계도 매한가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근본적으로 직업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는 미술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어느 집단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권력구조가 존재하고 있으며,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된 피라미드형 권력지형도가 놓여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대표적인 권력부류를 꼽으라면 단연 기자들과 평론가, 화랑주인, 미술관장, 정치작가 등이다. 작금엔 일부 전시기획자들에게서도 미술권력의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자본의 흐름을 배경으로 이합집산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때론 공모하고 연대하거나 개별적인 방법을 통해 권력에 무게를 더해간다.
미술판을 무대로 하는 또 하나의 권력집단은, 학교 내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파워를 지닌 일부 교수작가들이다. 작가라는 것이 변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곧 성공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이는 화가재벌로서 커나갈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것이며, 제도권미술의 핵심중추로 들어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동시에 작품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소수에 국한되는 교수작가가 되기를 염원하는 일부 미술인들은 정치작가와 마찬가지로 미술판에 만연한 헤게모니를 둘러싼 치열한 투쟁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학력, 공모전 수상, 각종 심사위원 등 경력 만들기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인맥쌓기에 거의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한다. 무한경쟁시대,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한 상황인지라 좋든 싫든 반드시 치러야 할 관문인 셈이다. 하지만 학력이 우수하고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모두 교수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즉 학교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실력이나 학력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인맥과 학연은 물론이고 선임교수들을 포함한 기존 구성원에 의한 보이지 않는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지나치게 지엽적이고 폐쇄적이라 미술대학 앞날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기존 교수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대를 이을 후배들을 심어 놓으려 한다. 자리보존에 필요한 까닭이다. 선임자들은 골치 아픈 후임 한 명 받았다가 곤혹을 치르느니 애초부터 말 잘 듣는 사람을 선호한다. 후임자 입장에선 모든 걸 그들에 맞춰야 한다. 모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하고 문제거리가 있거나 반발심이 크거나, 혹은 나이가 많아서도 안 된다. 학연·지연은 물론이고 화풍이 달라도 결격사유가 될 수 있기에 교수가 되려면 이와 같이 길들여지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처음엔 더럽고 치사하다고 느끼지만 한 두어 번 탈락이라는 쓴 맛을 보면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된다. 
헌데 문제는 이 와중에 교수희망자들의 많은 수가 시간강사시절, 혹은 학창시절 가졌던 혁신적이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을 사장시키고 말거나,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설사 선임교수가 만들어 놓은 수년 전 커리큘럼으로 교육할지라도 모른척해야 하고, 불요불급한 행사와 형식적인 모임에도 쫓아다니면서 리포트와 성적 처리, 학사관리를 비롯한 각종 잡무에 시달려야 하기에 작업할 시간도 부족하다. 최근엔 대학들끼리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생 유치전에 동원되어야 하는 까닭에 작품에 대한 열정마저 이래저래 희석되고 만다. 이에 몇몇 교수들은 그저 자리에 안주하려고 더욱 권력에 집착하거나 다분히 진부하고 개성을 잃어버린 작품으로 미술계의 발전을 흐리게 만든다. 이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부 교수들은 자신의 권위와 권세를 이용해 시대에 동떨어진 학습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껍데기에 불과한 교수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뒤떨어진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실기를 종용하고, 어느 정도 짬밥이 생기면 라인을 형성해 파벌을 만들기까지 한다(이에 교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살랑거리는 학생들도 있더라). 인터넷 시대, 글로벌시대를 맞아 발 빠르게 정보를 유입하는 실기생들 입장에선 그런 교수들의 안일함과 게으름에 지독한 현실적 괴리와 불만을 느끼지만, 우월적 지위를 가진 교수들은 유무형의 권력행사자를 넘어 미술계 기득권자이기도 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졸업 후 미술판을 떠난다면 모를까.
교육자인지 작가인지, 전문 교육자도 전업 창작자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과 배워야 할 사람들이 가르치는 현실, 그리고 그 답답한 보수적인 성향을 가보처럼 대물림하는 일부 교수작가들. 전부는 아니지만 캔버스에 예술 대신 부질없는 권력을 그리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교수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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