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성적소수자를 위해, 소설가 김비

김비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뭐 대단한 사람 만난다고 제주도까지 내려왔어요?”라고 했는데, 내 속마음은 이랬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제주도의 바다를 보고싶었고, 글을 쓰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간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엔 트랜스젠더 김비가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에세이와 소설들을 읽으며, 단순한 호기심이란 결국 편견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치열하게 세상과 싸워온 한 소설가의 모습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바다를 건넜던 것이다.

제주시 이호 해수욕장 부근에서 그녀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그녀의 첫인상은 단아하고 차분해 보였다. 해변의 작은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스파게티를 주문한 이후, 우리는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 그리고 문단 내의 가십들을 교류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독자적인 세계에 매료되어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트렌스젠더가 아닌, 의욕과 열정으로 가득한 새내기 소설가로 보였다.

 

못생긴 트랜스젠더에서 아름다운 소설가로

내가 글을 쓰는 의미요? 소위 말해 소수자라고 하는 우리들도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들은 많지요. 부족한 글이나마 내가 무언가를 남겨 놓으면 책은 남잖아요. 어딘가에 너덜너덜 걸려있더라도. 미래엔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데 조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비포레인’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개념을 소개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경력들을 통해 가끔씩 방송 활동을 하며 꾸준히 글을 써왔다. 자전적 에세이 <못생긴 트렌스젠더 김비 이야기>에서부터 <나나 누나나>, <플라스틱 여인> 등의 소설들을 통해 성적소수자의 삶을 그 편린들까지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낯설지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중이다.

김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세상과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이다. <나나 누나나>의 남자주인공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절친한 친구에게 어렵게 밝혔으나 그에게 여자를 빼앗기고 직장도 잃게 된다. 그러나 결국 담담히 일상으로 돌아온다. <눈썹달>에서는 여자로 살고 싶었던 한 노인이 등장하는데, 사후에 노인이 성전환 수술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겨진 가족들의 충격과 분노를 며느리의 시점에서 그리고 있다. 노인의 시신이 홍수에 떠내려가면서 오히려 가족들은 안심하게 된다. 잔혹한 결말이다.

인간사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소설 속에서 다루고 싶다는 그녀에게 그렇다면 왜 굳이 트랜스젠더를 내세워 말하고자 하는지 질문했다. 어느 정도 정치적인 목적이 있냐고 묻자, 그녀는 사회 변혁 의도가 있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정치적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트랜스젠더가 소외된 인물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인물유형이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나만의 소재일 것이라고 말하며 덧붙였다.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는 스스로 뭐든 이해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거짓말이거든요. 자기가 자기 생각 안에 갇힌 거거든요.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걸 깨뜨리는데 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죠. 그런데 누군가 이제 트랜스젠더 얘기는 그만 쓰라고 하더군요. 나는 트랜스젠더 얘기만 쓸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 외롭고 소외받은 사람들일 거고, 그래서 대중적이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건 각오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팔자지, 뭐.(웃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고독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소설가 김비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늘 사회부 기자만 자신을 찾아왔었다며, 내가 사회부 대상이냐고 농담을 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그간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방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히려 농을 걸었다. 그녀 역시 대학 영자신문사 출신으로서 학생기자에 대해 많이 배려한 것이리라.

등단을 한 후 인터뷰 요청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 매스컴을 많이 탔었으니까. 근데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예요. 트랜스젠더니까 상을 준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소설이 많이 부족하지만, 당시 심사위원이셨던 하응백 선생님께서는 자질보다 가능성을 보셨다고 하더군요. 저 친구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친구라고 생각했답니다. 트랜스젠더라는 딱지를 떼버리는 데에는 아마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요.

김비는 얼마 전에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이번에는 남자 동성애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인간 사회의 이기심과 소통 단절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는 아닐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평생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타고난 운명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이었다. 유흥업소가 아니면 세상에서 받아주질 않기에 다른 희망을 품지 못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자신의 사례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지극히 자잘한 일상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대신 그 에너지를 소설에 쏟아 붓고 있는 삶. 그래도 나는 행복한 편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곳 제주도에서 평생 글 쓰며 살게 될 것이라고 조곤조곤 말하는 그녀의 생에 대한 열의는,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더 깊어졌다. 세상이 귀를 열 때까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소설가 김비. 그녀와 함께 했던 제주도에서의 인터뷰 경험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게 주어진 건 영역을 넓혀가는 겁니다. 나는 늘 세상의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아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이에요.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건 어렵겠죠. 안이 너무 따뜻하니까. 글쟁이가 된 나로서는 평생을 가져가야 할 고독이 어쩌면 상당한 이득이겠죠. 어차피 가족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뭐, 이런 더러운 팔자가 있을까요.

 

돋보기_김비는 누구?

1971년 출생. 어린 시절, 그녀는 남자가 되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남자로 살아보았다. 그러나 괴로웠다. 정신병원에도 가 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쓰러지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성적소수자모임 ‘레인보우’를 만났다. 1997년에 만들어진 김비의 홈페이지 ‘bee4rain’은 외국 책들을 번역하여 각종 정보들을 실어 놓은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사이트였다. 그 후 매스컴도 많이 탔다. 병원 24시 ‘김비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수술한 후,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응원의 메시지도, 욕도 있었다.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이야기’라는 에세이가 나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편소설 <개년이>, 수필집 <다르게 사는 사람들>, <입술나무>, <플라스틱 여인> 등을 썼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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