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김명준 감독과 함께

독립 다큐멘터리영화 관객 9만명 동원! ‘훅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의 일상을 담아낸 <우리학교>의 기록이다. 해방 직후 재일교포 1세대들이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자비로 책상과 의자를 사들여 세운 ‘조선학교’. 그들의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3년 동안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김명준 감독을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만나보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낮 2시의 인터뷰, 김감독은 조금 늦겠다는 문자 후 5분 정도 지나 땀을 흘리며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청바지의 캐쥬얼한 차림에 큰 백팩을 맨 모습을 보니 <우리학교>에서 학생들이 카메라 너머의 명준감독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되었다.

▶재일동포, 조은령 감독과의 인연 그리고 <우리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후 촬영감독으로 활동을 하던 중 재일동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 하던 조은령 감독을 만나 함께 하게 됐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결혼을 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조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재일동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가 중도에 해체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내가 감독이 되어 내 눈으로 바라본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학생들과 함께한 생활, 에피소드

우리학교에서는 매년 고3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회를 준비한다. 그 중 대깃발을 만드는 과정을 촬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촬영을 거부했다. 그런데 나중에 학교 건물에 대깃발이 걸렸을 때 고3 학생들의 이름과 함께 맨 끝에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것을 숨겨서 감동을 주려고 촬영을 거부했던 것이다. ‘아, 이 친구들이 나를 학급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고 김감독은 휴대폰을 꺼내 ‘훅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21기’라고 쓰여진 휴대폰줄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졸업선물인데, 김감독도 학급의 구성원이라며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반응 vs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공중파에서도 재일동포에 관한 내용이 방송 되면서 사회의 관심이 증폭된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적극적인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60년 동안 그들과 우리가 왜 반목을 해왔는지에 대한 이유를 짚고 넘어감 없이 우리 동포라는 이유로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조선학교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인 것 같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재일동포와 3일만 같이 지내면 그들이 이해하는 민족의 개념에 대해서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하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족 이야기를 하면서 김감독의 목소리는 갑자기 커졌다. 재일동포와 함께 생활하면서 민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나 지면 관계 상 모두 실을 수 없었다.

▶재미 없는 독립영화? 재미 있는 독립영화!

독립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다는 것이 상업영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추구하고 그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독립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면 계속해서 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 정도의 재미를 보장받으려면 감독이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재정문제나 배급문제 등 연출 이외의 사안에 과도하게 압력을 받는다. 그런 이들에게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어서 <디워> 논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이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해 주십사 요청을 드렸다. 그러나 김감독은 주변의 소음에 개의치 않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감독의 눈으로 본 <디워> 논쟁

<디워>를 보지 않아 영화내용에 대해 논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시스템적인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한 사람의 열정으로 나온 것이 문화나 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디워>에서 만들어진 CG가 한국의 영화판에서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디워>라는 영화가 공적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영화제작자들이 CG만 좋아도 관객이 내용을 떠나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 비슷한 영화가 우후죽순 나오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그렇게 망한 것이 홍콩이고 우리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추후 계획 및 하고 싶은 말

현재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재일조선인이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민족이 되지 않도록, 재일조선인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고자 한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후 새롭게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 대학원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지식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요즘은 왜 배워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심각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부분을 내 안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4시즈음에 끝났다. 거의 2시간에 동안 김감독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반짝거리던 그의 눈빛을 기억하며 앞으로 더욱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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