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홍경한 /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붓 대신 ‘낙찰봉’이라도 들려고 하는 모양이다. 경매 바람을 타고 최근 한국미술협회 소속 작가 2백여 명이 일단의 컬렉터들과 함께 가칭 ‘오픈 옥션’을 설립중이다. 이 작가들은 오는 11월 1일 첫 경매를 목표로 다른 작가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리며 참여를 독려하는 등 본격적으로 그림 유통업에 뛰어들 태세다. 작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 그러려니 하면서 한편으론 작품에만 몰두해도 모자란 그들이 창작자의 신분을 저버리고 생뚱맞게 경매업에 손을 댄다 하니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경매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전국을 무대로 둥지를 틀고 있다. 서울옥션, K옥션이라는 양자 구도에서 탈피해 현재는 대구의 M옥션, 해외 명품만 취급, 차별화를 선언한 가구수입업체의 D옥션, 모 건설회사가 차린 ‘아르바자’, 앞서 언급한 작가들이 만드는 ‘오픈 옥션’까지…. 지사를 포함하면 약 십여 개에 달하는 경매사들이 앞다퉈 개장하거나 조만간 오픈할 예정에 있다. 여기에 중소화랑들도 아트펀드 운용, 중소경매회사 운영으로 대형화랑 중심의 경매업계에 맞불을 놓을 전망이고, 각각 온라인경매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어서 경매사의 미술계 진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단 두 개에 불과했던 2년 전에도 ‘과잉’이라던 경매사들이 줄기는 커녕 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을까. 수년 사이에 미술애호가들이 갑자기 수백 배 이상 늘었다는 것일까. 미술시장의 파이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일까.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경매사, 중개인, 작가, 소비자 모두 돈 좀 만지지 않을까 하는 속셈 때문이다. 겉으로야 ‘미술의 대중화’, ‘미술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둥 점잖은 척 하지만 그저 돈에 혈안이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덤벼들고 있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표현이다. 하긴, 한 회 낙찰금액 3백억 원이라는, 그야말로 도깨비방망이처럼 낙찰봉 한 번 두드릴 때마다 ‘억’ 소리가 나는 형국에서, 박수근 그림 한 점이 45억 원에 달하고 몇 년 전만 해도 가격형성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젊은 작가 작품들이 많게는 수천만 원을 호가해 중개수수료만 챙겨도 남는 장사이니 혹할만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잘만 고르면 수개월 내에 되팔아 대박을 터트릴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이만큼 ‘손쉬운 돈벌이’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경매에 있어 소비자들이 꼭 알아야 할 문제들도 많다. 주식시장이 상승국면이라고 모든 주식이 오르는 것이 아니듯이 미술시장에서도 잘못하면 상투를 잡아 곤혹스러운 결과를 맞을 수도 있음을 소비자들은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우거나 자기네 식구들부터 챙기는 작전 세력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경매회사를 만든 화랑의 전속작가 작품위주로 활발하게 거래되거나 그 작가들의 작품만 천정부지로 가격이 폭등되고 있는 것만 봐도 작전세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위작문제에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경매사들의 단점도 파악해야 한다. 설사 위작이라는 의혹이 있어도 경매사들은 공신력을 생각해 끝까지 진짜라고 우길 것이 뻔하므로 나름의 조사와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는 게 좋다. 대안처럼 언급되는 인터넷 경매 역시 작품성과 진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인터넷 경매가 투명하다는 등의 보도를 무작정 신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성없이 비대해지기만 하는 경매시장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판돈이 큰 만큼 위험부담도 크지만 이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없고 작품 가격이 초점일 뿐 작품성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경매에 등장하는 단골 작가라야 4십여 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한 달에 열 번 가량 열리는 경매 횟수는 지나치게 많고, 함량미달 작품·재고 작품을 처리하는 통로로 활용할 경우 미술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으나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현재 우리의 경매시장은 미술문화의 기본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시장만 기형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수준은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의 경매, 흡사 투전판과 같다. 경매사들의 돈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더해 가고 작가들마저 캔버스를 내던지고 경매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경매사가 독주하자 위기를 느낀 화랑은 화랑대로 경매 감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에선 반대로 화랑감시기구를 만들어야 된다며 여론공세를 펴는 중이다. 이전투구와 꼴 보기 싫은 밥그릇 싸움만 난무할 뿐 정작 열심히 밤새워 가며 작업하는 대다수 작가들의 입장이나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 따윈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버블의 영향으로 가격 폭락을 맞았던 일본의 90년대를 반면교사로 삼아 체력부터 키워야 하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이들에겐 잘 들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거품이 빠져 대혼란이라도 닥치면 어찌 감당할지 그게 두렵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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