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와 문화

 김영순 / 기호학자,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

소쉬르가 생존하고 있다면 현대 사회문화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렸을까. 그가 주장해 온 기호학의 기본 구상들인 ‘랑그-빠롤’, ‘기표-기의’, ‘통시태-공시태’를 비롯하여 특히 ‘계열체-통합체’는 여전히 문화적 텍스트를 읽는 데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150년 전 소쉬르가 경험했던 세계와 우리의 현실 세계는 다르다. 그의 기호학적 구상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기호학의 첫걸음, 문화체계 이해와 구조 분석
현대 기호학은 다양한 기호이론과 방법론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인문학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기호학이 분과 학문적 연구를 학제 간 연구와 연결할 때 매개적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 미친 ‘해석’의 기여를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기호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소쉬르의 숨결이 ‘구조 분석’이라는 기제와 함께 존재한다. 구조 분석은 기호학 공부의 첫걸음이다. 기호학 공부는 우리들에게 현실의 기호와 코드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것들을 ‘읽어내는’ 것이 독자의 역할임을 인식하는 데 기여한다. 이런 점은 우리가 왜 기호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즉 독자로서 ‘우리가 왜 소쉬르를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다.
문화는 코드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 때문에 코드는 문화 이해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문화는 가시적이고 형태적인 물질문화 층위와 비가시적인 비물질문화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비물질문화 층위는 다시 정신문화 층위와 사회문화 층위로 구분된다. 이러한 각 층위들에서 문화는 기호사용자(발신자와 수신자)들 간의 기호를 중심으로 일정한 관계와 구조를 형성한다. 관계를 해독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데 소쉬르 기호학의 기제들이 기여하게 된다.
기호는 의사소통의 가장 작은 단위이며, 문화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생산된다. 따라서 기호는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걸쳐 관계를 하고 있다. (그림1) 이 기호를 생산하는 측을 기호생산자라고 하며, 기호를 수용하고 유통시키는 측을 기호수신자라고 한다. 이 둘의 관계는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호생산자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인공물들이 텍스트이고, 이 텍스트는 기호사용자들에 의해 유통된다. 이런 텍스트들은 물질문화 층위를 구성하며, 이 영역에서 기호수신자로부터 사용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세 가지 문화 층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기호사용자와 텍스트 사이를 연결하는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다. 코드를 흔히 ‘기질’이라고 하며, 이 코드들에 의해 문화권역들이 구분된다. 코드는 정신문화적 영역에서 작동하면서 물질문화와 사회문화 층위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문화예술 텍스트는 세 문화 층위들에 적당하게 걸쳐 있는, 인간의 문화예술 행위에 의해 생산된 모든 물질들이다. 예를 들어 회화, 조각, 무용, 연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하지만 이 문화예술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특성을 지녀야 한다. 바로 이 구조적 특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구조 분석이다. 이 구조는 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구축된다. 물론 관계는 구성 요소에 내재된 의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의미로부터 관계, 관계로부터 구조를 구성하는 능력은 곧 창의력과 비판력을 길러준다. 구조 분석은 구조주의자들의 대표적인 분석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구조 분석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의미인데, 소쉬르는 이 의미가 기표들 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차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통합체와 계열체다. 여기서 통합체는 ‘위치’에 관한 것이고 계열체는 ‘교환’에 관한 것이다.
통합체적 관계는 결합을 의미하고, 계열체적 관계는 기능적인 대비를 의미하는데, 이 두 관계들은 반드시 차별성을 지닌다. 시간적으로, 통합체적 관계는 텍스트 안에서 함께 있는 다른 기표들을 ‘통합텍스트적’으로 지시한다. 반면에 계열체적 관계들은 텍스트 밖에 있는, 즉 텍스트에 나타나지 않은 기표와 ‘상호텍스트적’이다. 기호의 ‘가치’는 계열체적 관계와 통합체적 관계 모두에 의해 결정된다. 통합체와 계열체는 기호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구조적 컨텍스트를 규정한다. 또한 통합체와 계열체는 코드로 조직된 기호에 의한 구조적 형식이기도 하다.
계열체적 관계는 기표와 기의의 층위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계열체는 범주를 규정하는 모든 구성요소인 기표나 기의로 이루어진 한 집합이다. 그러나 범주 속에서 이들은 각각 구별된다. 자연언어에서는 동사와 명사와 같은 문법적 계열체가 있다. 주어진 컨텍스트에서 계열체 집합의 한 요소는 구조적으로 다른 요소와 치환이 가능하다. 여기서 하나의 기표를 선택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다른 하나의 기표는 선택에서 제외된다. 동일한 계열체적 집합보다 하나의 기표, 예를 들어 특정한 어휘나 의복이 더 많이 사용됨으로써 텍스트의 선호적인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계열체적 관계들은 ‘대비적’으로 보일 수 있다. 계열체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 텍스트에도 적용된다. 컷이나 페이드, 디졸브, 와이프 같은 쇼트 변화의 방식을 계열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나 장르도 역시 계열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미디어 텍스트에서는 미디어와 장르 선택 방법이 다른 선택들과 구별됨으로써 의미를 추출한다.

통합체적 관계와 계열체적 관계로 보는 텍스트
통합체는 상호작용하는 기표들의 순서적인 결합이다. 텍스트 안에서 전체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것을 소쉬르는 ‘연쇄’라고 불렀다. 그런 결합들은 명시적, 비명시적으로 통합체적 규칙과 관습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소쉬르는 “쌍방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는 언제나 작은 단위로 이루어진 더 큰 단위들이 있다”고 말했다. 통합체는 다른 통합체를 포함할 수도 있다. 인쇄 광고물은 시각 기표들의 통합체이다. 통합체적 관계들은 동일 텍스트 내의 요소들이 서로 관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다. 통합체는 계열체 집합에서 온 기표들의 연결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계열체 집합들은 관습적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지거나, 문법등의 어떤 규칙 체계들의 요구에 기초해 선택된다.
통합체는 주로 순차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순차적이란, 말이나 음악처럼 시간적 순서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통합체는 공간적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소쉬르는 연속적 표현과 연쇄적인 형태의 청각기호들을 강조했다. 그리고 항해용 깃발을 예로 들면서, 시각적 기표가 한 차원 더 높이 동시에 탐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간의 통합체적 관계는 데생, 그림, 사진에서 볼 수 있는데, 드라마,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기호 체계들은 공간과 시간의 통합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어떤 텍스트이든 간에 이들이 지닌 구조는 통합체적이고 계열체적인 측면을 모두 갖게 된다. 영화텍스트의 경우, 개별 쇼트에 대한 해석은 계열체적 분석과 통합체적 분석 모두를 필요로 한다. 영화에서의 계열체적 분석은 다른 쇼트를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체적 분석이란 쇼트의 앞뒤를 비교하는 것이다. 다른 시퀀스에서 사용된 같은 쇼트는 매우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실제로, 영화 통합체는 시적 통합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스틸 사진에서도 발견되는 공간 통합체를 포함한다. 시간 통합체는 몽타주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쇼트가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 통합체는 미장센으로서 각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다. 통합체적 분석과 계열체적 분석은 모두 기호를 코드와 하위 코드 내의 기능을 탐구하는 체계의 한 부분으로 다룬다. 어떤 기호 체계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련된 계열체적 집합들의 요소들과 함께 잘 갖춰진 통합체에서 한 집합과 다른 집합의 가능한 결합 모두를 포괄하여 통찰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을 하나의 장면으로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겉’과 ‘속’, ‘표현’과 ‘의미’ 그리고 ‘통합체’와 ‘계열체’ 관계로 따져보자. 세상 살아가기에 조금 복잡해지긴 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코드들을 읽어내는 데 아주 큰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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