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

홍경한 /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재벌 기업 미술관 큐레이터, 동국대 교수를 거쳐 광주비엔날레 국내 감독으로 내정되는 등 승승장구하다 수배자로 전락한 신정아. 근 10여 년간 타인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으며 큐레이터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그녀였지만 과욕과 탐천지공(貪天之功)의 결과에 의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모든 진상이 드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야 고작 두어 달.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신정아 본인의 입장에선 딱 그런 셈이었다. 
 발화점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미술계에서 찾는다 해도 크게 벗어난 건 아니다. 보다 철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학력과 인맥에 치중해 관리마저 허술했던 일부 기업미술관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정아씨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금호미술관은 미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을 어떠한 사전조사 없이 미술권력의 핵심에 앉힌 장본인이다. 성곡미술관 역시 금호미술관에서의 후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덜컥 학예실장이라는 자리를 내줘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운 죄값이 작지 않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학예실장이라는 든든한 배경은 동국대 교수임용에서도 효력을 발휘했으며 결국 광주비엔날레라는 국내 최대의 미술축제를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신씨가 미술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이처럼 유명 미술관 경력에 있었고 우리나라 사립미술관들은 초짜에게도 당할 만큼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립미술관들의 구조적 난제들은 무엇일까. 굵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가 재정의 어려움에 따른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재양성의 곤란함이다. 헌데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예산이 세계 유례없이 적은 우리나라에선 정책자들의 마인드가 180도 뒤바뀌지 않는 한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요원하기에 말할수록 입만 아프다. 이것보다 실질적이며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어느 미술관이든 관장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인사정책이나 전시 운영이 이뤄지고 그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 총수 마나님들이나 그 자제들이 운영하는 기업 산하 사립미술관들의 행태는 거의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이 미술관이 당면해 있는 두 번째 문제점에 해당된다.
미술관을 국민 문화향유의 근간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사립미술관장들은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든 큐레이터들을 해고한다. 이런 상황에서 큐레이터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란 불가능하고 본연의 임무인 전시기획에 충실할 수가 없다. 그저 안 잘리는 게 최선인 양 알아서 처신하기 급급하다. 일부에서 큐레이터가 아니라 비서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 기인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적어도 사립미술관에선 큐레이터로의 발탁과 지위부여가 반드시 개인의 자질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관장의 의중에 따라 저울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신정아가 해당 미술관 고위책임자들에게 상당히 잘했던 이유도 그것이 권력 및 자리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제는 미술관이든 화랑이든 큐레이터의 자질은 곧 그들의 정체성과 직결되지만 구조적인 폐단 혹은 모순으로 인해 자주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려면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문광부가 인정한 80여개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에서 일정한 기간 이상의 경험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런데 공급대비 수요도 귀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가끔 나는 자리도 인맥에 의해 선점되기 일쑤여서 진입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설사 어렵게 들어갔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대체로 계약직에 머물 수밖에 없어 진보적인 발전성을 기대하기 힘들고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위직 간부들과 종속관계를 갖게 되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관장의 파워가 지나치게 세다는 것과 더불어 이것 역시 우리나라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하는 원인이다.
한편 잘 가꾼 인맥 하나 열 실력 안 부럽다는 격언을 제대로 실천한 인물인 신정아는 지난 10여 년간 미술계에 몸담으면서 “미술계, 그거 별것 아니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오늘날 신정아의 마음은 답답할 것이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니 분통 꽤나 터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밤중에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를 비롯해 미술계를 염려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이다. 희대의 사기꾼이 우리 미술계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이렇게 갖고 놀았나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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