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노무현정부는 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수도 서울을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충청도민의 지지를 통해 정권획득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의 추진에는 엄청난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헌법 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것이다. 결국 행정부 일부만 이전하는 정치적 타협안으로 당초 계획과 다른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먼저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제기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기로 한다. 수도권에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핵심적 국가기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국토 이용상의 불균형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역대 정부는 수많은 종류의 수도권집중억제정책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수도권 집중현상을 막지 못했고 지방과 수도권과의 격차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집중의 근본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기능 즉 정부, 경제, 교육, 사회문화기능 등이 공고하게 결합된 연계 고리가 수도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계 고리는 우리나라의 핵심적 기능을 수도권으로 집중시키는 일종의 블랙홀을 형성하게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부가 정부를 지방에 이전함으로써 연계 고리의 중심에 위치한 정부기능을 끊거나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우리 국민들의 전통적 서울지향성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하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사고가 우리나라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공고한 사고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예 수도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국토이용에 있어서 효율성이 균형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에 대하여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과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주장하는 선택과 집중에도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수도권에 대하여 정부가 그동안 수많은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불이익을 받아왔으니 이를 해제하여 경쟁력을 더 키우자는 것이다. 이렇게 수도권이 잘 살게 되면 파급효과가 국토가 협소한 대한민국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고 결국에는 지역간 격차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주민들은 이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서울과 수도권이 대부분의 국가자원을 독식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지방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수도권 규제는 더욱 강화되어야만 지방이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행정수도건설을 정책으로 채택한 노무현 정부의 결정은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수도이전정책은 야당과 수도권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장애를 만났고 결국은 절름발이식의 부분적인 행정부 이전으로 결말지어졌다. 소수파로 이루어진 노무현 정부의 현실적인 한계를 보인 것이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평가를 할 수 있다.

왜곡된 정치적 타협물로써의 행정중심복합도시
행정수도 이전에 가장 적극적인 반대를 한 수도권 주민들의 경우 수도 이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이었겠지만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하면 강남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에 이러한 점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에 민감한 서울의 기득권 세력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이상적인 명제보다는 자신의 재산권에 손실이 오는 것에 당연히 반대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수도 이전에 반대한 일부 서울시민의 경우 수도를 빼앗긴다는 자존심의 문제도 내재하고 있었을 수 있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으므로 이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투표 등의 대안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하려 한 것은 논리적으로는 맞았으나 현실적으로는 적절한 방안은 아니었다. 확신에 찬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의 이전 정책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작업을 소홀히 하였다. 행정수도 이전이 피해를 주거나 상생할 수 있다는 증거를 찾아 제시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수도권이 과밀의 고통에서 얼마나 해소되며 어떤 혜택이 돌아올지를 알리는 데에도 나서지 않았다. 사실 수도권 과밀에 대하여 많은 수도권 주민들은 정부에서 뭔가 정책적으로 해결대안을 내주기를 원하고 있음에도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신행정수도가 건설되면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도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동안 성장의 핵심 엔진 역할을 해온 수도권이 잘되야 우리나라가 잘되고 동북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이해와도 상충되는 논리였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중심인 야당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는 유권자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표를 의식하고 이 문제를 적극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노무현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자 노력하였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즉 충청권의 눈치를 보면서 야당의 정치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득실에만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공간이 사멸하는(death of space) 시대라고 한다. 정보통신기술이 첨단화되면서 물리적인 입지의 중요성이 사라지며, 이것은 행정수도의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정책결정은 국민의 지지에 기반을 두어야만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은 길고 복잡한 이름 만큼이나 본래의 의도에서 왜곡된 정치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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