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남중국해라고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중국해와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중국해는 중국에서 남해라고 부르며 동쪽은 필리핀 군도, 서쪽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 반도, 남쪽은 보르네오 섬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광동성 난아오섬(南澳島)과 대만 남쪽 끝을 잇는 선으로 대만 해협을 통해 동중국해와 연결되는 곳을 말한다.
남중국해의 전체적인 면적은 대략 350만 ㎢이다. 남해군도라고 할 때는 남중국해에 흩어져 있는 250여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 섬들을 말한다. 또한 이 섬들을 동사·서사·중사·남사의 4개 군도로 나누기도 한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남사군도는 남중국해의 남단에 위치한 해역으로 100여개의 소도, 사주, 환초,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해면 위에 돌출한 모든 도서의 총면적은 2.1㎢에 불과하다.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이곳의 전부 혹은 일부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약 50개의 섬을 분쟁국들이 점유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일부 국가들은 군대까지 주둔시키고 있어 수차례의 무력 충돌이 다반사로 일어난 상태이다. 
문제의 발단은 1960년대 말 유엔 아시아·극동 경제 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이 지역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한국 전쟁 및 월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에 의한 사실상의 대륙 봉쇄 작전은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문제가 일어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이 수교한 것을 비롯해 월남전이 종식된 것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영유권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으로서는 이곳의 불안한 상황을 남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교역을 하는 경우나 원유를 도입하는 경우, 해상에 의존하는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걸프만, 말라카 해협,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사군도의 전략적, 경제적 관련성은 우리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과 영유권 주장의 근거
남사군도 분쟁의 주된 당사국은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3개국이다. 이 남사군도는 베트남과 필리핀으로부터 각 500㎞, 중국으로부터 1300㎞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원을 탐사하거나 유전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경쟁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국이 점유하고 있는 섬에 군사 시설, 관측소, 대피소 등을 설치함으로써 영유권 굳히기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이 있다. 그것은 2004년 4월 19일 100명의 관광객을 실은 베트남 군함 1척이 관련국들의 비난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7박 8일의 일정으로 남사군도에 크루즈를 감행한 것이다. 이는 본 행사의 목적이 남사군도에 대한 주권을 베트남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이들 3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영유권에 대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남사군도 전체가 자국의 영토라는 주장의 근거로 명나라 때인 15세기 초에 이곳을 항해한 적이 있다는 기록과 함께 당시의 상세한 지도를 제시할 수 있다는 역사적 발견 이론을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또 베트남 역시 프랑스가 1930년대에  이 곳을 베트남령으로 귀속시킨 사실을 근거로 남사군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역사적 승계 이론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반해 필리핀의 경우 1956년과 1971년 이 일대를 탐사한 결과 어느 나라도 이 지역을 점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972년 남사군도 중 일부의 섬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는 일종의 실효적 지배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분쟁상황에 대하여 기존의 해양법협약 중 섬과 관련되는 조항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산에 불과하다. 1994년에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에는 섬과 관련하여 조항 하나(제121조)만을 달랑 만들어 놓았을 뿐이며, 이는 섬에 대한 개념 설정 정도에 머물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국제 해양분쟁 사례 중 유사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동 지역에 있어서의 분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팔마스섬과 클리퍼튼섬 사건이다.
팔마스섬 사건이란,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이 필리핀 민다나오섬 남동쪽으로 50해리에 위치한 팔마스섬을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며 불거진 미국과 네덜란드 간의 영유권 분쟁을 말한다. 미국은 주장의 근거로서, 그 섬의 발견 및 스페인과 미국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파리 조약, 그리고 인접성이 있다는 논리에 따른 당연한 권리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주권이 실효적으로 행사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팔마스섬에 대해 1700년에서 1906년 사이의 기간 동안에 방해받은 적 없던 평화로운 주권 행사가 네덜란드 주권의 존재를 충분히 알렸음을 중재 재판소로부터 인정받은 바 있다.
클리퍼튼섬은 멕시코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1,120㎞ 떨어진 태평양상의 섬으로, 면적은 7㎢정도다. 그리고 이 섬은 무인도로 프랑스와 멕시코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게 만든 곳이다. 멕시코는 클리퍼튼섬이 오래 전에 스페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1836년 이후 스페인을 계승했기 때문에 1858년 프랑스가 클리퍼튼섬을 발견했다는 것은 무효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재재판소는 클리퍼튼섬이 스페인에 의해 발견되었음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설사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1897년 멕시코가 동 섬에 군함을 파견하기까지 주권 행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중재 재판소는 스페인이 자국 영토라고 단순하게 확신한 사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프랑스의 행위가 유효했음을 판시한 바 있다.

새로운 해양법 질서가 요구된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남중국해에 있어서 특히 남사군도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실효적 지배가 이루어졌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일견 보기에는 필리핀의 경우 합법적인 편입 과정을 통해 주권의 행사를 한 실효적 지배를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리핀의 주권 행사는 그  탐사 시기에 있어서 석유 자원의 매장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가 나온 이후다. 그  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외부적인 여러 가지 여건 상 해양으로 진출할 수 없었던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실효적 지배가 이루어졌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동 해역에 있어서 영유권 분쟁의 격화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주변 관련국만의 사항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2년 중국과 아세안 10개국은 남중국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을 자제하기로 한‘남중국해 당사국 행동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으며, 이어 2006년 10월에도 중국은 아세안 정상들을 초청함으로써 남중국해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따라서 도서 영유권의 경우, 비생산적인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영유권 문제를 잠시 유보하더라도 ‘공동 개발’이라는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질 방향은 새로운 또 하나의 해양법 질서를 태동시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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