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 인하대학교 법학부 교수

하나의 정형화된 유형으로 국가의 모든 주권 행사를 규정할 수 없듯이, 국가가 특정 영토를 취득하거나 상실하는 과정 또한 단일화된 용어로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세기 동안 있어 왔던 주요 국제사법판결은 국제법상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일반원칙을 형성하여 왔다. 1928년 팔마스섬 중재재판 이후, 05년 베닌과 니제르 간의 영토 및 경계획정 분쟁 사건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각종 국제사법기관을 통해 결정된 주요 영토 분쟁에 관한 판례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영토 분쟁과 관련된 국제법상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형성된 국가가 분쟁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특정 분쟁 지역에 대한 국가 권력의 행사가 실질적, 지속적, 평화적, 그리고 충분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둘째, 영토 주권은 분쟁의 대상인 영토의 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전개된다. 셋째, 영토 주권은 일반적으로 주권의 발현을 의미하는 국가 및 정부 권한의 기능 행사에 관해 분쟁 당사국들이 제기하는 증거들을 평가함으로써 그 상대적으로 근소한 우세를 판정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그리고 넷째, 증거의 증빙력은 분쟁 영토의 점유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국가의 행위와 관련되어야만 한다.

 동아시아 주요 영유권 분쟁 현황 및 쟁점
 전세계 인구의 25%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남북한, 중국, 일본 등을 주요 구성국가로 하고 있다. 구성국가의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은 그 모든 구성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의 당사국으로 있다는 측면에서 지역의 안정성이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중국의 영토는 동서 길이가 5,000km, 남북 길이는 5,500km이며, 국경선은 총 길이 2만km이다. 북쪽에서부터 황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로 둘러싸인 해안선은 1만 4,000km에 이른다. 이렇듯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거의 모든 주변 국가들과 영토 및 경계획정 분쟁에 놓여 있다. 주요 분쟁으로는 베트남, 인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과의 국경선 및 해양경계획정 분쟁, 남사군도, 서사군도, 센카쿠섬(釣魚島) 등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 등을 들 수 있다. 일본 역시 러시아와 쿠릴섬, 중국, 대만과 센카쿠섬, 그리고 한국과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의 당사국이며, 한국은 남북 분단 이외에도 한일간의 독도 분쟁, 최근 들어 중국과 영유권, 경계획정 분쟁의 함의를 가지는 간도, 이어도 등 현안들의 당사국으로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동아시아의 주요 분쟁 사례 가운데 국경선 및 해양경계획정 분쟁을 제외한 협의의 영유권 분쟁에 해당하는 남사군도, 서사군도, 센카쿠섬, 쿠릴섬 등 주요 도서 분쟁 사례들을 중심으로 현황 및 쟁점을 분석하고, 동아시아의 영유권 분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에 대해 살펴본다.
대부분 무인도인 남사군도(南沙群島, Spratly Islands)에는 상업적 어로활동 이외의 유용한 경제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사군도의 전체 또는 일부 특정 도서 및 영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국가들은 중국,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그리고 브루나이 등 6개 국가이다. 현재 남사군도에 대한 각국의 영유권 주장에는 주로 남사군도 해역에 묻혀있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이해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해상운송에서 남중국해가 차지하는 위상이 분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 남사군도 주변의 남중국해를 통과하는 항로는 전 세계 해상화물 운송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중동에서 말라카해협을 거쳐 한국, 중국, 일본으로 운송되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수송로로써 남사군도 해역은 커다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맞물려서 남사군도가 가진 전략적 가치가 1970년대 이후 중요한 역내 정치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주요 분쟁 당사국인 중국은 역사적 권원(權原) 이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후의 각종 문서들, 즉, 1943년 카이로 선언, 1945년 포츠담 선언, 그리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을 원용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간의 서사군도(西沙群島, Paracel Islands)에 대한 분쟁도 이 지역 일대의 해양 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의 발효로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인정되자 각국의 경제적 이익이 더해져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1946년 동부 서사군도를 점령한 후 다시 1974년 서부 서사군도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서사군도 전체에 대해 지금까지 단독 점유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트남은 자국의 영토 주권을 주장하며, 중국의 무력점령에 항의하고 있다. 서사군도 분쟁의 쟁점은 서사군도에 대한 역사적 권원의 문제와 전후 처리 과정에서의 서사군도의 법적 지위이다.
 사실상 잊혀진 상태에 있었던 센카쿠섬에 대한 인식은 유엔 아시아 및 극동 경제위원회(ECAFE)에서 1969년 센카쿠섬 주변 수역에 막대한 양의 석유 매장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갑작스럽게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분쟁 당사국인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은 센카쿠섬 최초 발견 및 실효적인 점유 여부, 일본이 1895년 1월 문제의 도서를 일본의 영토에 편입하였을 당시 센카쿠섬이 무주지(無主地)였는지의 여부, 1895년 5월 중일전쟁 이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중국이 대만을 일본에 할양할 당시 센카쿠섬이 대만의 속도로서 일본에 귀속되었는지의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의 대립을 보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의 센카쿠섬의 법적 지위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간에 분쟁 중인 에토로후, 쿠나시리, 시코탄, 그리고 하보마이로 구성된 쿠릴섬에는 크게 세 가지 법적 쟁점이 있다. 첫째, 러시아와 일본 가운데 어느 국가가 분쟁 도서에 대해 발견과 선점 이론에 근거하여 권원을 주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둘째, 분쟁이 되고 있는 '쿠릴섬'에 대한 개념 정의의 문제이다. 그리고 셋째, 분쟁 도서인 쿠릴섬에 대한 귀속주체를 밝히지 않고, 단순히 일본의 영토 포기만을 언급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의미를 규명하는 문제이다.

 동아시아 영유권 분쟁의 본질적인 문제점
동아시아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주요 분쟁 사례 가운데 일부 사례들만 분석해보더라도, 이 사례들은 동아시아의 영유권 분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즉, 상기 언급한 영유권 분쟁에 적용되는 국제법의 일반원칙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국제법은 유럽 제국주의의 확장과 함께 발전했으므로 현대 국제법의 역사적 소명은 제국주의의 잔재인 식민주의의 청산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과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차별적인 영토 확장을 위한 이론적 뒷받침의 역할에 충실했던 소위 유럽중심주의적인 국제법의 전횡이 영유권 분쟁에 침윤되어 있다. 그런데 이에 적용되는 국제법의 일반원칙을 동아시아에서 현재 진행 중인 영토분쟁 사례에 어떠한 법리상의 변형 없이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영토 분쟁에 잔존하고 있는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의 패전국 영토에 대한 불분명한 전후 처리과정을 감안하면 그 당위성이 보다 강조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토 취득에 대한 관행이 궁극적으로 유럽중심주의적인 국제법상의 영토 취득 및 상실에 관한 일반이론과 차별화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 이에 대한 본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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