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종말

예술작품은 배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누가 창조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예술은 천재가 만든다. 번뜩이는 창작은 범인이 할 수 있는건 아닐테니 말이다. 천재란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고흐, 몬드리안, 피카소 등의 쟁쟁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듣고 보면 이 ‘사실’은 좀 더 명확해진다. 린다 노클린은 언뜻보면 당연해 보이는 예술창조와 천재의 관계에 의문을 가진다. 71년 그녀는 ‘왜 천재적인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제목으로 한 논문을 발표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는 65년에 스스로 천재라고 자화자찬한 자서전인 <천재의 일기>를 출간했다. 달리는 그 책 속에서 천재미술가 10명을 선정해 천재성의 점수를 매겨 도표로 만들었다. 최고 점수인 20점으로 대상의 영예를 안은 미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벨라스케스와 베르메르, 피카소였다. 달리는 19점을 얻어 당당하게 6등을 차지하고 있다. 이 천재들의 명단에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린다 노클린은 예술이란 오로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한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 천재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천재는 만들어진다’라고.
그렇다면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술의 영역에서 천재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일상성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특권을 부여받으면서 탄생한다. 이는 근대적 의미에서 주체 혹은 개인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된 채 표현의 자유를 부여받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이들이 천재이다. 그들의 능력, 즉 창조하고, 발명하고, 지배하는 능력은 그들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는 개인적 믿음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권리에 접근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그러한 권리에의 접근을 우리는 권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의 주체만이 천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여성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쨋든) 정치적 권력의 주체로 성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유색인종이나 그 밖에 ‘타자’들도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듯 보이기도한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은 ‘형식적’으로 모든 인간을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정당성이 아닌 필요에 의해 신분제를 폐지해야 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 민주화는 상당부분 경제적 필요에 의해 성취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실현시킬 수 있는 권력에 접근이 가능하려면 정치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적 민주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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