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모 /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

일본의 현행법은 헌법 제9조에 의하여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집단적자위권이란 예를 들어 ‘미일동맹’관계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간주하여 동맹국을 도와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자민당이 작년 9월 11일 총선에서 개헌선인 3분의2를 확보하여 지난 창당 50주년기념식에서 ‘군대보유’를 골자로 한 헌법 제9조의 개정 등 초안을 발표한 것과 지난 9월7일 제임스켈리 주일미해군사령관이 미일양국이 공동추진 중에 있는 미사일방어(MD)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집단적자위권행사가 가능하도록 일본 국내의 활발한 헌법 개정 논의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이 오는 9월20일 자민당 총재선거를 거쳐 출범하기로 예상되는 ‘아베내각’의 최우선과제인 헌법개정의 구상과 일치함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약 2천년에 걸쳐 960여차례의 침략을 받아왔다. 지정학적으로도 가혹한 역사를 체험해 옴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일본인들은 대개 말이 적으며 조심성이 많고 상대의 의견에 신중함을 기하다가 서서히 자기의 의견을 피력해나가는 방식이다. 일본말에 ‘내마와시(根回し)’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어떤 일을 실현하기 위해 미리부터 주위의 각 방면에 이야기 해두는 것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대사를 위한 사전주변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 특히 경어 등에는 현장 감각이 듬뿍 풍기는 ‘바의문화(場の文化)’가 있는데 이것은 그때그때의 상황변화에 따라 유효적절하게 적응해나가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9월 6일 아키히토 일왕의 둘째며느리인 기코 왕자빈의 아들 출산으로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해왔던 개혁법안인 ‘황실전범’도 그 개정을 보류한다고 아베신조 현관방장관이 발표한 바 있다. 79년에서 82년까지 (주)고오베제강회사를 다니다가 퇴사직후 외무대신인 아버지 아베신타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지 24년 만에 최고자리에 오르게 될 차기권력자의 아베신조 역시 일본 언어문화의 대표적인 용어 ‘내마와시’와 ‘바의문화’에 따라 헌법개정에 의한 집단적자위권행사운운 등의 발언을 하고 있으며 우리 한국과의 관계도 그 문화적 배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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