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역사 - 레니 리펜슈탈 사망

하연화 / 광고홍보학과 석사과정

3년 전 이맘 때, 재능 있고 열정적인 예술가, 그러나 ‘나치의 핀업걸’이라는 비판을 일생 동안 피해가지 못한 레니 리펜슈탈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히틀러의 요청으로 만든 나치 전당대회 다큐 영화 <의지의 승리>는 나치 프로파간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며 그녀에게 ‘히틀러의 야심을 살찌운 죄 많은 예술갗라는 굴레를 씌웠다. 그러나 그녀의 천재성과 실험적 시도에 대한 일각의 재평가와 함께 열정으로 가득했던 예술가로서의 재조명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나는 삶에 대한 ‘미친 듯한 치열함’ 으로 똘똘 뭉친 그녀에 대해 한동안 헤아리기 힘든 호기심을 느꼈다.
스스로 다섯 편의 인생이었다고 말했을 만큼 101세의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무용수로, 배우로, 감독으로, 사진작가로, 그리고 70세가 넘어 시작한 스쿠버다이버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살아있는 순간 내내 진정으로 ‘생동하는’ 존재였으며 그런 그녀에게서 나는 시련에 맞서는 ‘투사’의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한 저널리스트에 의해 출간된 그녀의 일대기를 통해 본 리펜슈탈은 분명 몽상가이며 이상주의자였다. 어쩌면 그 점이 초기 히틀러의 면모와 닮아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치 선전사업에 깊이 관여했는지, 아니면 그녀 자신이 생전에 주장했던 대로 그저 정치에 무지한, 그러나 재능은 숨길 수 없던 예술가였을 뿐인지 판단할 순 없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끔 뛰어난 사람들, 그래서 시대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 자신조차 닿을 수 없는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