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가

글싣는 순서 : 한미 FTA   ①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②과연 세계적인 대세인가

    IMF사태 이후 9년이 지난 현재 우리사회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몇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계기로 점철되어 있고 첨예한 대립지점을 파생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각각의 이슈들이 노자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하여 진단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미 FTA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7월 14일 한국무역협회 주최 조찬회에서 “한미 FTA에 무조건 반대하려면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 등 폐쇄를 선택한 국가들이 성공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으면 한국은 북한, 리비아, 쿠바, 이란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70%라는 점에서 이 말은 황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이 말 속에서도 그 전제가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세계화’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내세운 이래, 우리는 ‘세계화’라는 말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살고 있다는 ‘세계화’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국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초까지는 세계의 국민경제들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잣대로 보면 70년대 이후 이루어진 국제화 세계화가 매우 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기를 더 올려 보면, 세계화가 가장 전진되었다고 이야기되는 금융시장도 국제금본위제도가 작용하고 있었던 제 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에 비해 더 세계화 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무역, 해외직접투자 및 노동력 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Bairoch 1996, p.179. 정성진의 <세계화인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인가?>에서 재인용)
그런데도 세계화 예찬론자들은 세계화를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설명하며, ‘세계화’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고 있다. 예를 들어 WTO의 첫 사무총장이었던 레나토 루지에로는 “WTO를 통한 자유화 노력이 21세기 초반에 세계의 빈곤을 뿌리 뽑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미 FTA를 통해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되고 있다. 데리다가 ‘맑스의 유령’이 다시 출몰했다고 표현했듯이, 선진국에서도 실업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실질임금의 삭감은 물론이고 부와 소득의 불평등도 심해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표상인 미국에 거대한 빈민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부국과 빈국간의 격차 역시 더 벌어지고 있다. 결국 과거의 문제로 치부됐던 부와 소득의 불평등의 문제, 즉 양극화의 문제는 세계화라는 물결 속에서 해결은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눈과 귀를 닫고, 자기 주장만 되뇌는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는 이미 존재해 왔고, 예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인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하면서 한미 FTA를 주장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다면 주도적으로 시장개방을 통해 이익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 속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벌어진 ‘멕시코 논쟁’이다. 멕시코는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로 11개의 FTA를 맺어 FTA에 관한 한 선두주자였다. 노무현 정부도 틈만 나면 멕시코의 경제 성장을 설명하며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던 멕시코가 일본과의 FTA를 마지막으로 무역 수지 적자와 낮은 경제 성장률에 시달리다가 결국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서야 노무현 정부는 멕시코 경제에서 잘된 건 ‘나프타’ 덕이고, 잘못된 건 ‘멕시코’ 탓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백미는 ‘멕시코의 양극화 심화는 나프타 때문이 아니라 95년의 페소화 위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양극화, 페소화 위기, 나프타 이 세 가지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페소화의 위기(페소화의 가치 폭락)는 나프타를 위한 것이기도 한데,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달러에 비해 고평가된 페소화의 평가절하를 의도적으로 늦췄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정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멕시코의 양극화는 “세계화, 정보화,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선진사회 어디에나 있는 오랜 ‘그늘’을 세밀한 카메라로 들췄을 뿐”이라며 “사실 한미 FTA 협상은 성장의 한계점에서 나타나는 이런 상황들을 풀기 위해 내놓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고심에 찬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멕시코의 양극화는 세계화의 부작용이라면서, 한미 FTA로 한국의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은 것이다.

한미 FTA는 시대의 필연이 아니다
미국과의 FTA는 가장 높은 수준의 FTA라고 불릴 정도로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분야 등 전 산업에 걸친 개방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웃한 일본은 이런 이유로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추진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아전인수 격인 시각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과의 FTA로 농업의 몰락과 국내적인 제도 변화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스위스 역시 올해 초 미국과의 FTA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농업을 전면 개방하느니 차라리 미국과 FTA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도 요르단, 칠레, 싱가포르, 호주, 모로코, 멕시코, 캐나다로 그리 많지 않다. 결국 한미 FTA가 시대의 필연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한미 FTA 4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 한미 FTA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거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찬성과 반대에서 누구의 입장에 따를 것인가에 있다. 사실 스위스와 일본에서 미국과의 FTA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국 자본의 입장 때문이었다. 양극화로 내몰린 사람들의 입장은 없었다. 따라서 양극화의 심화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에서 한미 FTA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라는 말에, FTA가 세계적 추세라는 말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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