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확대 재생산

  IMF사태 이후 9년이 지난 현재 우리사회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몇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계기로 점철되어 있고 첨예한 대립지점을 파생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각각의 이슈들이 노자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하여 진단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 한미 FTA①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② 과연 세계적인 대세인가


오는 9월 6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릴 한미 FTA 3차 협상을 앞두고 ‘한미 FTA’와 ‘사회양극화’가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지난 6월, 7월에 각각 진행된 1, 2차 협상이 한미 양국 간의 상호 견해차를 확인하는 ‘예비협상’이었다면 이번 3차 협상은 구체적인 개방 대상과 방법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본협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한미 FTA로 사회양극화는 해소될 것인가, 아니면 심화될 것인가.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미 FTA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해 우리가 제안해 성사된 것”이며 “여러 전략적 고려를 보고 받은 뒤 심사숙고해서 결정내린 것”이라고 말해 왔다. 미국에 의한 강압이 아니라 참여정부가 먼저 나서서 한미 FTA를 제안했다는 말이다. 지난 2월 9일 미 의회조사국(CRS)에서 펴낸 보고서는 “04년 초 한국 외교통상부가 FTA를 제안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 해 준다. 그러면 참여정부는 한미 FTA를 왜 먼저 제안했을까. 그것도 미국을 상대로 해서.
참여정부는 ‘선진통상국갗를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자본축적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제조업 위주의 수출지향형 성장전략이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중국과 인도 등 경쟁 국가들이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다는 판단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그 방향이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로 모아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에서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은 서비스업”이며 “서비스 시장을 열어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자”고 강조하는 것은 이를 의미한다. 이른바 ‘외부쇼크’에 의한 개혁이다. 이왕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업 경쟁력을 가진 미국 시스템과 직접 경쟁하자는 것이다. 사회양극화 문제 역시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 속에서 고용창출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쟁력’의 논리에 빠지지 말아야
참여정부의 의도대로 한미 FTA가 타결되면 한국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한미 FTA에 따른 산업간 실익을 따져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경쟁력이란 말을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공통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더 많은 이윤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경쟁력’에 불과하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수도권 소재 64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미 FTA 관련 기업의견 조사’는 자본의 입장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조사 결과 기업들의 65.8%가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대기업(67.2%)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65.2%)도 한미 FTA를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대자본이나 중소자본이나 한미 FTA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동일한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소자본 역시 관세 철폐로 미국시장 수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의 생각에 우리들의 삶은 그려지지 않는다. 오로지 이윤뿐이다. 그리고 축적이다.
따라서 한미 FTA에 대해 ‘어떤 산업은 피해를 보고, 어떤 산업은 이익을 본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종속됨을 의미한다. 한미 FTA는 산업간 그리고 산업 내의 자본간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한미 FTA는 결국 사회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것
한미 FTA를 반대하는 여러 단체들의 목소리에 이어 지난 6월과 7월 공중파 프로그램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멕시코의 중간계층 몰락을 사례로 들며 FTA의 어두운 그림자를 집중 조명했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세계화, 정보화,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선진사회 어디에나 있는 오랜 ‘그늘’을 세밀한 카메라로 들췄을 뿐”이라며 애써 반대 여론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멕시코가 미국과 맺은 NAFTA가 한미 FTA의 근간이 됨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외부쇼크’에 의한 서비스업 구조조정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현재 한국의 서비스업에는 부동산,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에 자영업자의 비중이 매우 높고 주로 영세한 실정이다. 따라서 한미 FTA로 서비스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시화 된다면 이는 수백만에 달하는 영세한 자영업자나 농민 등 중간계층의 몰락으로 이어져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비정규직 입법이나 노사관계 로드맵과 함께 한미 FTA에서 미국 자본의 요구들이 관철된다면 이 역시 노동자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며,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이지만 자본의 입장에서는 마음껏 축적할 수 있는 ‘천국’이 따로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가 미칠 이러한 파장들은 결국 사회양극화의 해소는커녕 심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심각한 사회양극화는 한미 FTA로 더욱 가속 페달을 밟게 될 것이다. 한미 FTA로 사회양극화를 해결하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참여정부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앞으로 한미 FTA 3차 협상을 기점으로 한미 FTA가 우리 사회에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한미 FTA를 분명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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