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기에 더욱 위험한, 역설의 메커니즘



김은정 /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최근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에서 여주인공은 권태기적 사랑의 본질을 찾아내기 위해 성형을 통한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성형 수술’이라는 현대 과학의 집약적 보고(寶庫)는 주인공에게 실체와 본질, 육체성과 가변성에 대한 극심한 혼란을 안겨주게 된다. 이 같은 영화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현대 과학 기술의 이중성은 이제, 픽션이 아닌 실제 우리의 삶에 너무나 자연스레 산재하게 되었다. 우리가 추구하던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 존재 그리고 확고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단계로까지 접어든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이중성과 역설적 현실을 근간으로 우리가 깨닫지 못한 근대성의 이면을 해부하고 있다. 그가 바라본 현대 사회는 ‘위험사회’이다. 방사선과 같이 인간의 평상적 지각을 완전히 벗어나는 위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등지어 부과되는 위험, 자본주의에 의해 배가 증식되는 위험,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 위험 등 인류가 누리게 된 풍요의 혜택과 더불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은 전범위적이고 새로운 양상으로 재생산되었다. 잠재적이고 예외적이었던 고전 산업 사회의 위험이 현대 사회에 이르러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이행된 것이다. 이에 작가는 ‘위험사회’를 통해 근대성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장했다.
‘성찰적 근대화’. 울리히 벡은 ‘성찰적 근대화’라는 명제로부터 위험사회에 봉착한 현대 산업 사회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궁극적 대안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가 언급한 성찰적 근대화란 산업 사회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적 한계를 수용하고 산업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원리 -특히 현대 기술 과학- 자체를 성찰하여 과학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고 반전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풍요 사회를 되짚어 인식하고 구조적 맥락의 이중성을 파헤쳐 나가는 것이 바로, 성찰적 근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벡의 논의는 물론 선진화된 근대성을 일찍 경험한 서구 사회의 발전과 진행상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담론을 한국 사회에 무비판적으로 대입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 역시 ‘근대성’의 허울 안에서 생활 방식, 노동 계급, 가족 형태를 비롯한 기반 구조의 불안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측면을 인식했을 때, 벡의 위험사회에 대한 진단과 근대화에 대한 성찰은 분명 가치가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이혼율, 동거를 비롯한 임시적 가족 유형, 노동 시장에서 발발하고 있는 갈등과 노사 분규 등의 내적 요소는 환경 파괴 등의 전 지구적 위험 요소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허물어진 안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다행스러운 일은 위험사회에 드러난 그의 ‘성찰적 사고’가 누리기에만 혈안이 된 풍요사회의 이면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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