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허물어지는 우리네 삶터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안고, 장터 입구에서는 투쟁가가 울린다. 더위를 몰아내며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물건 값을 흥정하는 행인들로 가득하리라 예상되는 곳. 그러나 그곳엔 포크레인이 들어섰고 용역깡패들의 고함과 폭력의 굉음이 들어섰다. 기본적 생존권을 위해 가수용 상가를 설치하라는 철거민들의 요구는 폭력 속에 묻히고, 1년 8개월의 지난한 투쟁이 우리네 장터의 삶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흑석동의 흑석시장.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거리 위로 용역깡패들의 폭력이 담긴 사진을 걸어놓고 앉아 계신다. 나는 길을 물어 철거민 한 분을 만났고, 지난 철거투쟁의 과정을 듣게 되었다.
흑석시장 철거민들의 투쟁은 지난 04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된 흑석시장은 서울시와 건물주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강제철거 대상이 되었고, 시장의 세입자들은 갑작스레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거리로 나앉게 된 세입자들은 구청에 문제해결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청장에게 건물주와의 간담회 개최를 요구했다. 그러나 간담회는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을 뿐이며, 구청장의 문제회피는 노골적인 것이었다. 철거를 통해 파괴된 그들의 인권은 구청장의 시각에도, 건물주들의 사리사욕에도 들어설 곳이 없었던 것이다. 재개발로 시장의 땅값은 수천 배로 뛰었고, 돈 잔치에 눈 먼 건물주들에게 시장 상인들의 삶은 정복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철거반대 투쟁은 관공서들의 무시 속에서 외롭게 지속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6월 14일 새벽에 용역깡패들이 무단 침입했다. 그들은 노약자들과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무참히 폭행했고, 시장 내의 가판대들을 일거에 파괴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물세례를 퍼붓기도, 휘발유를 철거민들의 몸에 부어 위협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구청은 차가운 외면의 시선으로 일관하였다.
흑석시장에는 이미 포크레인이 들어와 건물을 파괴하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거민들은 오랜 투쟁으로 경제적 상황이 바닥났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더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취재를 하는 동안 아홉 살짜리 아이가 가게로 들어와 엄마에게 안긴다. 아이와 엄마가 보다 평안한 곳에 자신들의 품을 꾸릴 수는 없을까. 사회가 보이는 폭력과 외면이 뒤틀린 우리 삶의 아픈 현실을 비춘다. 

고태경 편집위원 / donghwa@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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