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과학 : 중성미자

이성규 /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위원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1,000m 아래에 물 5만t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다. 지름 40m, 높이 42m의 원기둥형으로 파낸 암반 위에 설치된 물탱크 안은 마치 태초의 세상처럼 고요하다. 더구나 사방에 방송국 조명기구처럼 생긴 직경 50cm의 초고감도 빛탐지기가 1만1,000여 개나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아연과 납을 생산하던 일본 기후현 카이오카광산에 들어선 이 시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그곳은 바로 중성미자를 잡아내는 슈퍼카미오칸데라는 실험시설이다. 중성미자란 원자의 핵융합 또는 핵붕괴 과정에서 생성되는 전기를 띠지 않는(중성) 아주 작은 입자다. 때문에 우주에 엄청난 양이 흩날리지만 물질과 거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관측이 어려우므로 ‘유령 입자’라고도 불린다.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만 하더라도 지구 표면의 엄지손톱만한 넓이에 초당 수백억 개가 쏟아지는데, 대부분 지구를 뚫고 우주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우리의 몸을 투과하는 중성미자만도 1초에 수십조 개에 달한다. 그럼 어떻게 지하의 커다란 물탱크 안에서 중성미자를 잡아낼 수 있을까.
무엇이든 뚫고 다니는 중성미자지만 수백조 개 가운데 하나쯤은 물 분자에 부딪쳐 물 원소의 핵에서 전자가 튀어나오게 한다. 이 전자는 물속에서 파란빛을 내며 빠른속도로 움직인다. 너무 희미한 빛이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슈퍼카미오칸데 안에 설치된 초고감도 빛탐지기로는 관측할 수 있다.

질량문제 해결위한 열쇠

슈퍼카미오칸데의 전신인 카미오칸데는 원래 양자의 붕괴로 인해 발생되는 방사선을 검출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 검출 장치는 의외로 흥미로운 물질을 관측하는 성과를 올렸다. 1987년, 지구에서 16만 광년이나 떨어진 대마젤란성운의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 12개를 잡아낸 것이다.
중성미자는 1930년 볼프강 파울리가 방사능 물질의 붕괴 과정에서 에너지 보존법칙이 깨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가상의 입자다. 그런데 1956년 코원과 라이네스에 의해 파울리가 예견했던 전자 중성미자가 발견되고, 1962년에는 뮤온 중성미자도 발견되었다. 중성미자는 중입자인 쿼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렙톤(경입자)에 속하는데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의 세 종류가 있다. 타우 중성미자는 아직 관측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간접적으로 입증돼 있다.
지난 04년 슈퍼카미오칸데에서는 중성미자에도 질량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포착했다. 거기에서 250km나 떨어진 쓰쿠바시의 양성자 가속기로부터 인위적인 뮤온 중성미자 빔을 만들어 슈퍼카미오칸데로 정조준해 쏘아 보낸 결과, 도중에 일부의 뮤온 중성미자가 아직 관측되지 않는 타우 중성미자 등의 다른 형태로 바뀐 것이다. 한 입자가 다른 입자로 바뀌려면 필수적으로 질량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진동 변환을 일으킨다는 것은 곧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까지는 중성미자가 어떤 물질도 그냥 투과해버리기 때문에 질량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우선 우주의 질량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 현대 과학으로는 전 우주의 별을 모두 합해도 전체 우주 질량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계산이 나온다. 이는 우리가 미처 볼 수 없는 작은 입자가 우주에 널리 퍼져 있어 나머지 90%의 질량을 채우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빛과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 그 미지의 입자를 암흑 물질이라고 부른다.

중성미자 검출 시설 마련 예정

빅뱅 이론에 의하면 현재 우주에는 폭발과정에서 생성된 중성미자가 1㎤당 약 330개 정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중성미자의 질량이 정확히 밝혀지고 세 종류의 중성미자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 추정하는 타우 중성미자의 정체가 드러날 경우 암흑 물질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질의 입자를 설명한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 꼽히는 표준모형이론이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표준모형이론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주 생성의 비밀을 간직한 중성미자의 검출시설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건설된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3월 올해부터 4년 동안 90억원을 들여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건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부터 본격 가동될 이 검출시설은 원전에서 150m 및 1.5km 지점의 지하 깊숙이 설치된다.
중성미자 검출 연구는 서울대 물리학부 김수봉 교수팀이 주도하게 된다. 김 교수는 바로 1987년 슈퍼카미오칸데에서 대마젤란성운의 초신성 폭발 때 나온 중성미자를 찾아내는데 크게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중성미자 검출기가 완공되면 원전에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중성미자를 포착해 그 중 몇 개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변하는지 추정, 비교함으로써 중성미자 진동변환상수를 발견하는 것이 연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외국의 경우 중성미자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속시설을 일부러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광, 울진 등 원전이 밀집한 장소가 있어 입지적으로 건설이 유리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