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조창연 /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글자가 아닌 그림을 못 읽는 사람이 미래의 사회에는 문맹인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벤야민의 혜안은 날카롭다 못해 예리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를 바라보면 아직 벤야민이 예견했던 단계까지 와있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언어는 아직까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미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못 읽어내면 ‘이미지맹’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그를 문맹인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이미지가 끊임없이 언어의 영역을 넘보면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현장의 도처에서 이미지의 부활은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매체와 이미지의 카오스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이 충돌에도 어떤 원인이 있다. 원인을 생각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언어와 이미지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의미를 담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와 이미지의 충돌문제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는 지평에서 성찰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의미를 담고 표현하는 매체와 의미의 정체성 혼돈이 근본적인 문제일 듯 싶다.


이미지는 그래픽 이미지, 광학적 이미지, 지각적 이미지, 정신적 이미지, 그리고 구두적 이미지를 포괄하는 ‘다중의미체’이다. 다중의미체로써 이미지는 원래 실재를 지시하거나 모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실재를 지시하거나 모방하는 과정에서 매체가 지나치게 왜곡되게 관여함으로써 이미지는 실재와 무관하게 되고, 괴리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로써 이미지는 이미지가 지시하는 실재에서 표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떠한가. 언어의 의미 결정을 살펴보면 그 의미 생성이 매우 자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나무와 이것을 지시하는 언어로서의 ‘나무’사이에는 자의적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언어가 지시(reference)하는 실재와 언어의미는 무관한 것으로써 이 자의적 의미를 매개하는 매체들의 차이만이 의미를 만들 뿐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실재를 지시하는 진정한 언어적 의미는 없다.


충돌의 원인은 그나마 실재를 모방하고 지시한다고 믿어졌던 이미지가 표류하면서 여기에 정박된 언어까지 표류하여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고전적 믿음의 관계가 깨어짐으로써 시작된다. 여기에서 이미지가 언어를 파괴하고 언어가 이미지를 파괴하는 혼돈스러운 충돌이 시작된다.


이 충돌현상이 명확하게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장이 예술작품이다. 일찍이 다다이스트인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의 복제품에 콧수염을 그려 놓고 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이 알파벳을 그대로 프랑스어로 읽으면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라는 외설스런 의미로 들린다. 이것은 작품속에 아름다운 모나리자의 미소가 보여주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단번에 무화시키고 희화화 시켜버린다.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벽을 허물다




또 다른 예로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있다. 이 작품은 담배 파이프 이미지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파이프 이미지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자’를 통하여 부정됨으로서 문자와 이미지는 서로 충돌하게 된다. 여기서 원래 문자의미를 전달하는 ‘말하기’와 이미지가 ‘보여주는’ 의미는 상충하게 되어, 글의 의미와 이미지의 의미는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이미지도, 글도 실제 파이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바바라 크루거’와 같은 작가도 사진이미지에 광고나 포스터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자나 표어를 병기해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러한 예들은 이미지와 문자가 서로 충돌하여 서로를 파괴하고 서로 의미를 부정함으로서 재현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지나 언어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도식적인 관념을 깨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이들 관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현상들은 일상적 사고의 틀에서 보면 우리를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기존의 고정된 의미체계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이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증거이다.


즉 문자와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물의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감추어진 형상들의 의미를 새롭게 열어 보이려는 노력이다. 궁극적으로 언어와 이미지의 충돌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의미생성의 영역을 새롭게하고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언어와 이미지의 개별적 영역이 통합되어 새로운 메타기호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언어나 이미지 텍스트를 읽고 쓰고, 읽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숙해졌듯이 이 새로운 기호 또한 체계적으로 학습되고 익숙해져야 한다. 이렇게 됐을 때 이 메타기호의 의미생성과 표현 방식은 익숙하게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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