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염정민 /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정칟경제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자 죽이기가 한창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노동‘계급’ 죽이기가 한창이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되어온 노동조합은 성장을 가로막는 ‘악의 축’인양 취급받고 있다. 작업장 단위로, 산업별로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던 ‘분할지배(divide-and-rule)’는 이제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분리선을 따라 차별에 기초한 갈등과 충돌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빈곤과 실업, 사회적 양극화의 현실에 내몰린 노동계급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망각한다.


망각의 중심에는 시장의 효율성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논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 논리의 중심은 자율적 조정능력을 지닌 시장의 가격기제에 의하여 생산과 분배에 관련된 정보가 교환되는 동시에 의사결정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은 강력한 경쟁 메커니즘을 통하여 성장과 기술혁신의 원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효율성과 소비자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물질적 파이를 증대시킨다. 여기에 국가는 개인과 사회의 경제적 문제들에 대하여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하고 오직 최소한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한다. 또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고 경쟁제도의 틀을 유지하는 것에 자신의 임무를 국한시켜야 한다.
물질적 파이를 다시 나누려는 어떠한 시도도 파이 그 자체를 줄어들게 만들 것이며, 작은 파이의 큰 조각보다 큰 파이의 작은 조각이 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는 명시적으로는 평등을 반대하지 않지만, 경험적으로는 반평등주의자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정당화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희소성이라는 실존적 상황 아래에서 합리적 선택’이 곧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팽창하는 욕망 덩어리로서 인간 존재는 그 욕망에 한계가 없어 보인다. 그것만큼이나 분명한 또 하나의 진실은 욕망은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이다. 충족시킬 욕망은 많고 수단은 한정되어 있는 현실의 갑갑한 상황이 곧 희소성이며,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인간은 어떤 욕망부터 충족시키고 또 어떤 수단을 어떤 용도로 써야 제일 알뜰한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목적부터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 얼마만큼 만족시킬 것인지를 사고하는 능력이 ‘합리성’이며, 여러 목적들에서 얻는 만족의 크기, 즉 효용을 최대로 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최적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 부의 핵심은 물질적 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충족되는 만족감에 있는 것이다.  


희소성이라는 상황에서의 고립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경제 논리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진리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인간의 경제적 활동은 사회적 관계와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는 그러한 경제활동의 결과물로 생겨나는 것이라는 생각은 경제현상을 계급관계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해방시켜 순수하게 희소성 하에서의 선택을 통한 만족의 극대화로 변형시켜 버린다.


이러한 자기 정당화 논리에는 사회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정치영역과 경제영역은 어떻게 분리·결합되어 있는가, 그 사회의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욕망을 갖게 하는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등의 사회 정치적 문제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경험은 순수한 자율적 조정능력을 가진 시장과 그 속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는 자기 파괴적 경향을 지니고 사회를 붕괴시키는 악마의 맷돌로 상징되는 시장과 대면하게 된다. 시장의 무한정한 확장은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의 등장을 촉진시키고 대규모 실업 그리고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킴으로써 시장의 사회적 기반 자체를 파괴해 시장의 기능 자체를 소멸시킬 항상적인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시장의 존립과 원만한 작동을 위해서는 국가에 의해서 제공되는 정치적 기초가 있어야 되는 반면에 국가는 시장을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져오는 경제적 기초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의 시장개입이 때로는 시장의 자율적인 작동을 제한하고, 반대로 시장의 과도한 팽창은 국가의 존립 근거 자체를 잠식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진다.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고려하는 즉 효율적인 국가를 매개로 시장의 합리성과 사회의 평등성을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사회정치적 결정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는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정치적 결정과 동시에 작동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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