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영진 /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문화인류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처럼, 한 문화와 다른 문화는 충돌을 거듭하며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물론 양자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각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특질 등을 상세히 고찰하면서 그 특질들이 빚어내는 긴장의 역학관계를 기술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형에 치우친 문화론적 분석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억측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인류학적 반성은 40년대 문화와 인성 학파에서 제창했던 ‘국민문화론’의 대두 이후 심각하게 제기된 바 있다.


하물며 ‘인간은 왜 충돌하는갗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더욱 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문화인류학적 설명은 개별 사회의 구체적인 맥락에서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기술을 제공할 수 있지만, 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일반론적 설명에 있어서는 취약한 편이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필자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체질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에 빚진 게 많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생물-문화적 진화라는 설명 틀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극단적인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문화적 결정론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자의 장점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생각하기 좋은’ 관점이다.    


리처드 랭햄은 자신의 책 <악마같은 남성>에서, 영장류 집단(특히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라는 침팬지 사회)에 대한 동물행동학적 관찰을 통해 인간 폭력성의 기원을 생물-문화적 진화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 저자의 입장에 따른다면, 인간의 공격성이 순전히 문화적이라거나 우리의 선조가 평화적이었다고 생각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性선택이 인간 남성을 공격적으로 만들었는지를 알아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그 이론은 접어두고 증거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 증거는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신체적 증거로 제시된 것이 인간 남성의 발달된 넓은 어깨와 팔이다. 대부분의 영장류와 달리 인간의 송곳니는 아주 작고 발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 남성의 어깨와 팔은 붉은 사슴의 목 근육, 지노퍼스 개구리의 꽉 쥐는 손, 많은 영장류의 송곳니와 같이 싸움을 위해 진화된 성 선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정신적 증거는 신체적 증거처럼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의식과 이성적인 결정’에 기초한 공격성은 性선택과 같은 진화적 힘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물은 감정에 의해, 사람은 이성에 의해 행동한다는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사고에 근거한 것이며, 사실 양자 모두 양쪽이 혼합되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다시 말하자면 논리는 가능한 것들의 목록을 생산하며, 그 목록으로부터의 선택은 감정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컷의 공격성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하나의 원인은 ‘자존심’이라는 감정이다. 한창기 침팬지 수컷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서열 문제는 지위에 대한 집착, 자존심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높은 지위를 차지한 수컷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더 많은 생식 기회로 연결시키는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진화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수컷의 자존심은 수많은 갈등의 근원이며 정신 영역의 넓은 어깨에 해당된다. 자존심이란 性선택이 남겨준 또 하나의 유산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본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당사자인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한 침팬지 집단 내의 두 마리 수컷, 권력이 성장 중인 한 마리와 우월한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또 한 마리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악마적 남성의 원인을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하여 자연과 결별하게 된 인위적인 문화 세계의 탓으로 돌릴 수 없듯이, 그것이 유인원류의 일반적으로 과도한 폭력적 행동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관계의 폭력’이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관계의 폭력에 깔려 있는 전제는 그 동물이 서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즉 폭력을 사용하는 개체의 생식적 성공을 높여준다)이다. 유인원의 극도의 난폭성은 그들 조상의 음침하고 괴기한 특성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왔다기보다 매우 발달된 인식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집단-패거리와 수컷연대라는 두 가지 특유의 습성 조건은 자연선택의 추한 유산, 즉 적대적인 이웃이 만났을 때 죽일 기회만 노리는 경향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된다.


이상의 생물-문화적 설명틀은 ‘문화’라는 변수를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매우 음침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체질인류학자들 역시 사회생물학을 주창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변수와 제한적 틀을 넘어서는 인간폭력의 일반론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며, 하나의 변수로서 문화의 역할을 어느 정도로 상정할 것인가에 따라, 구체적인 맥락에 따른 더 다양한 설명이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라르에 따른다면 폭력의 기원은 모방욕망이지만, 이 욕망의 뿌리는 심리적, 사회적, 종교적, 혹은 이를 통틀어 ‘문화적’인 것이자, ‘생물학적’인 것이다. 특정한 맥락에서 “인간은 왜 충돌하는갚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양자를 아우르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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