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어느 대학원생의 하루

박준웅 / 철학과 석사과정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로 가는 길은 늘 전날의 피로와 더불어 지난밤의 꿈을 이어가듯 몽롱한 상상에 빠지곤 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로 가는 좌석 버스에서 나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듯, 휴대용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꼽는다. 아나운서의 또박또박한 발음에서 현실로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듯, 귀 기울이는 라디오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학교 후문에 도착해 있는 나를 마치 다른 사람 쳐다보듯 발견하게 된다.
학생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내가 머물고 있는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어제 생각했던 내용을 전날 일기 적듯 써내려간 노트에서 되새기고자 한다. 자연과학과 더불어 모든 분과 학문으로부터 분리되었던 인문학의 영역은 더 이상 그것만의 영역을 고수하지 않는다. 이미 여타의 모든 실천적 학문과 인문학의 경계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고, 간간히 살펴보는 인터넷 뉴스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나에게 마치 어떤 실천적인 대답을 원하는 듯 나를 추궁한다. 전공에 대한 자긍심과 그 무궁무진함에 스스로 탄복하며, 동시에 나는 그 무게에 스스로 짓눌리기도 한다.
많은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대답해 보기도 하며, 내 제한된 지식과 지혜를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다른 모든 인문학도가 그렇듯이 나 또한 세계와 바로 직면한다. 세계와의 연관성은 나 스스로 부여하지 않았으며, 나는 어떤 의미에서 무책임하게 세계 내에 있는 존재이기에 사회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나와 세계와의 관계는 나라는 존재의 실존적인 그 무엇이리라. 세계의 수많은 인간의 연관관계에 대한 대답을 던지는 것이 미약하게나마 내가 이 세상에서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는 나 자신만의 존재 표현일 것이다.
자신이 매진하고 있는 학문을 세계, 혹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근간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나의 존재의 속성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자기 이유를 부여해 가며, 나는 연구실의 조그마한 스탠드를 벗삼아 책을 읽어가며, 논문을 정리해 나간다. 특정한 학문과 특정한 직업만이 사회의 유용한 그 무엇으로 평가되는 현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사회 내 존재를 스스로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내가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이 학문을 선택했다는 나 스스로에게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와 세계의 실천적인 관계 형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문학도가 그렇듯이, 학문의 모든 분야가 포괄적으로 이해되며, 화해 불가능하리라 보이는 이 세계에 정합적으로 그 성과를 드러내길 바래본다. 마치 모든 자유주의적 국가가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균형을 꾀하듯이, 한 대학의 모든 학문이 조화로이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해 나가는 건강한 사회를 상상해 본다. 학문의 길에 접어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의 기준이 사회적인 기준에서의 즉각적인 유용성과 장래의 경제적 안정성인 불균형적인 현실의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심해 보며, 연구실의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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