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선풍 / 민속학과 교수


한국인이 설정한 상상의 동물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용과 이무기를 우선 들어야 할 것이고, 다음은 해태와 봉황 등을 들 수 있겠다.
세계 대부분의 인류가 용 신화를 지니고 있다. 신라 박혁거세의 부인 알령은 용의 왼편 옆구리로 태어난 미인이었으니 그녀는 용녀인 셈이고, 또 헌강왕을 따라 나라에 공을 세우고 악귀를 물리쳤던 처용랑도 알고 보면 동해용왕의 아들이었다. 대개 민간설화에 의하면 용이 용을 낳기도 하지만 구렁이나 잉어, 미꾸라지 등이 오랜 세월 동안 도를 닦으면 성룡해서 승천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꾸라지 용 되었다”고 하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물고기는 용이 되길 희원한다. 그러나 그같은 욕망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최고 지위는 왕이다. 그리하여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고 임금님 앉는 자리를 용좌라 이른다. 각종 문헌에는 용 모티프가 등장하는 설화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호법(護法), 호국(護國) 상징과 벽사적이고 수신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용이 되지 못한 수신인 이무기도 있다. 용이 되려다가 못된 용과 구렁이의 중간적 존재이다. 한마디로 미완의 한을 지닌 동물이고 영물에 속해 용의 아류(亞流)에 들지만 악귀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튼 한국인뿐 아니라 동양인들이 용의 후예라면 서구인들은 용을 천적으로 인식하는 후예들이다. 서구의 기사들이 그토록 용을 잡아 댄 역사의 유흔만 보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해태는 해치의 또 다른 우리말 발음이다. 원래 환인 조선 때에 송사를 맡은 관리가 정확히 판결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하면, 하늘에서 해태를 보내 범죄자와 시비선악을 구별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곧, 이 동물은 바른 정치를 펴고 국방도 튼튼히 하기 위해 천제가 보낸 남두육성으로 땅에서는 사특한 귀신을 물리치고 화재를 방지하는 벽사서수에 속한다.
나르는 새인 봉황은 신조로 처음에는 봉(鳳) 한 자만 사용하였으나 암수를 구별하기 위해 암컷을 뜻하는 황(凰)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닭의 주둥이, 제비의 턱, 뱀의 목, 거북의 등, 용의 무늬,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 상서로운 새로 동방의 군자지국인 우리 나라에서 난다고 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오음(五音)의 소리를 낸다는 상상의 동물로 성인의 출현과 태평성세, 평화, 경사 등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인이 설정한 상상의 동물은 과장법이라는 수사법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민족이상이요, 민족이념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서구의 기사들이 용퇴치담을 만들고 있을 때 우리 선인들은 용신이담을 창출하고 있었으니, 서구인과 한국인의 이상과 이념의 세계가 이처럼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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