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억과 변화의 장치

 


김대래 / 사진학과  석사과정

 

시간은 사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우선 발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간이 없다면 사진 자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전통적인 은염사진이건 최근의 디지털 카메라이건 간에 피사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하려면 일정시간 동안의 노광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사진에 담겨진 사건과 상황이 기록되고 이해되려면 이것들이 행해지고 이해될 수 있는 시간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이 사진에 큰 영향력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반대로 사진이 시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먼저 사진은 ‘과거’의 의미를 바꾸었다. 사진 발명 이전의 과거는 머리 속에만 흐릿하게 기억되거나 문자라는 추상적인 매체를 통해서만 기록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구체적으로 남겨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의 등장은 과거를 구체적으로 ‘저장’될 수 있고, ‘보존’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시켰다. 사람들이 여행을 갔을 때 그 장소를 둘러보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것은 사진이 만들어 낸 과거의 속성인 ‘추억거리’를 저장, 보존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즉 사진은 망각되거나 추상화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속성에 공간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인 사진이 과거를 공간화 시켰다면, 최근의 디지털기술과 인터넷이 만든 새로운 사진환경은 ‘현재’의 특성을 바꾸고 있다. ‘현재’의 특성은 통신매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곳에만 국한되는 장소적인 제한이 있었다. 이후 방송과 잡지와 같은 거대 매체로 인해서 현재라는 시간적인 특성에서 장소의 제한은 많이 없어졌으나 매체 속성상 그 장소는 거대한 사건이나 뉴스거리가 일어나는 공적 공간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라크의 포로수용소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현재의 시간적 특성이 사적인 공간까지 포함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미군들에 의해 진행된 학대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이것에 대한 실시간적인 반응은 이라크 뿐 아니라 한국 및 세계각지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사진에서 보여진 현재가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싸이월드 열풍에서 볼 수 있는 사생활적 이미지의 범람도‘현재’가 지닌 사적공간으로의 확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진매체에서 보여질 수 있는 시간의 특성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사진을 볼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의 디지털카메라나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진 환경의 변화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감안할 때, 사진이 변화시키는 시간의 특성이 또다른 형태로 변화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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