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간관계에 의해 정의된 시간

 


박진희 / 가톨릭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시간 개념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으로 우리는 주저없이 아인슈타인(A. Einstein)을 든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인 변혁을 가져옴은 물론, 물리학의 기반을 바꾸어 놓은 것이 그의 상대성 이론이다.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Peter Galison)은 그의 최근 저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들:Einstein’s Clocks, Poincar’s Maps>(W.W.Norton & Company, 2003)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과학사학자답게 갤리슨은 스위스 베른, 파리, 뉴욕에 보관되어 있던 각종 문헌들을 토대로 새로운 시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 동역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은 제목이 보여주듯이 당시 전자기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던 것이었다. 물리학의 대가 로렌츠(H. Lorenz)나 독일의 아브라함(M. Abraham), 수학자 푸앵카레(J. Poincar)는 전자기 현상을 에테르라는 물질을 가로지르는 힘들이 전자를 속박하거나 퍼뜨리고, 서로 뭉치게 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당시 문제가 되던 광속불변, 겉보기 질량 증가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전혀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세움으로써 에테르, 전자, 움직이는 물체에 관한 당시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동시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관찰자의 공간 좌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뉴튼(I. Newton)의 절대적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한 관찰자가 A지점에 있으면서 자신의 시계가 12시를 가리킬 때, A로부터 거리 d만큼 떨어져 있는 B지점에 있는 관찰자에게 빛 신호를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A에서 전달된 빛 신호는 B에서 반사되어 A로 되돌아온다. 여기서 B지점에 있는 관찰자는 자신의 시계를 A와 동기시키기 위해서는 빛이 도달하였을 때, A의 시각 12시에 빛이 달려온 거리를 고려한 시간을 더하면 된다. 여기서 빛의 속도는 양 방향으로 일정하다고 가정한다. 이렇게 시간은 두 관찰자 사이의 공간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었다.


 이런 아인슈타인의 혁명적인 사고는 갤리슨에 따르면, 그가 살고 있던 베른시와 그가 근무하고 있던 특허국이라는 환경이 가능하게 해준 것이었다. 시간 개념을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구체적인 시계의 ‘동기화’와 연관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아인슈타인이 최초로,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 아인슈타인이 특허국으로 향해 집을 나서면서부터 마주하는 것이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시계였다. 이들 시계는 당시 무역과 교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전신 기술, 철도 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원할한 철도 수송, 철도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각 시에 설치되어 있던 시계들을 동기화시키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시계 기술의 정교화도 크게 요구되고 있었고, 덕분에 베른 특허국으로는 거의 날마다 시계 관련 특허들이 들어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인슈타인이 전자기 이론뿐만 아니라 전기 조절 시계와 연관된 도구들 제작에도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이렇게 당시 구체적인 근대 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던 것이었다. 갤리슨은 몇 달 뒤에 아인슈타인과 동일한 상대성 개념에 도달한 쁘엥까레의 경우도 마찬가지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두 지점 사이의 경도 차이를 구하는 방법은 동일한 시각에 특정 천문 현상을 관측하여 관측값을 비교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두 지점 사이의 시계를 동기화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쁘엥까레가 시계 동기화 개념에 도달하게 된 것은 해저 전신망을 이용해 정확한 경도 측정을 달성하고자 한 프랑스 경도국에 근무하게 된 때였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동기화 개념에도 해저 전신망, 전신 기술, 정확한 식민지 지도 작성이라는 프랑스 국가의 이해 등이 관계되어 있다. 갤리슨은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과 구체적인 기술, 일상의 촘촘히 짜여진 매트릭스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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