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연대의 세계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영역을 가지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나 스스로를 도야할 수 있으며, 사회가 전반적 생산을 조절하게 되어 이를 통해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소를 치고 저녁식사 후에는 토론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맑스가 <독일이데올로기Ⅰ>(청년사, 1998)를 통해 밝힌 자본주의의 끝, 그 이후의 삶의 모습이다. 이는 단순히 상상 속의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손배가압류, 노동운동탄압,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고, 무역자유화 협상을 막기 위해 한 농민이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고, 사상 최악의 실업난과 취업난 그리고 카드빚과 생계에 대한 절망감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맑스의 문구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유토피아적 상상에서 끝나지만은 않는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는 “어떤 대안도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TINA)”고 단호히 선언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승리가 초래한 세계 경제의 위기와 사회적·세계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싸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대안을 만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하나의 프로세스(process)와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의 끝, 그 이후를 단지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닌 구체적 대안으로 그려낼 수 있다.


3차에 걸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의 슬로건이었던 “또 다른 세계(혹은 대안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이 테제는 어느덧 반자본주의, 반세계화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말하는 또 다른 세계 즉 대안이란 초국적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 그들의 확대재생산에 복무하는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의해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저항하는 구체적인 실천지침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확신 속에서 “이제부터 세계사회포럼은 단지 행사로 국한되지 않는, 대안을 모색하고 건설하는 영구적인 프로세스”가 되어 토론과 제안, 논쟁의 장으로부터 탈피하여 반신자유주의라는 저항의 일상화 속에서 전세계적 연대를 모색하는 장이 됐다.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됐던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MST: 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is Sem Terra)은 브라질 핵심 대중운동 중 하나로, 이들은 극소수 부유층이 토지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소유주는 있으나 경작되지 않고 버려져있는 토지를 점거하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룬다. 각자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 중 절반은 공동 부엌 등을 운영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개별 가계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의 노동자 자주관리(WSM: Worker self-management)도 주목을 끈다. <월간 사회진보연대> 지난 4월호에 개재된 제임스 페트라스·헨리 벨트마이어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노동자 자주관리>에 따르면 작년만 해도 2백개가 넘는 공장이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조직·통제됐고 노동자들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 고용의 보장과 증가, 사회적 생산과 이윤의 사회적 전유의 결합, 공장, 부분, 전국, 국제적 수준에서의 계급의 연대 창조 등의 결정권을 가진다고 한다.

 


 

‘이윤이 아닌 인간’을 보다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그 이후의 대안을 위해서는
전세계 민중들의 수평적 연대가 필요하다


 


세계사회포럼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실천적 대안을 보여줬다면 최근에 발행된   <파레콘>(북로드, 2003)은 자본주의의 끝, 그 이후를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이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참여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뜻하는 <파레콘>의 저자 마이클 앨버트(Micheal Albert)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하워드 진(Howard Zinn)과 함께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파레콘>은 “공평성,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적 균형 등의 기본적 가치들에 기초해 경제정의를 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의 노동분할전략과 사회적 불평등의 극대화, 자본의 무한 확장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참여경제라는 한마디는 생소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파레콘>의 곳곳에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안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 참여경제의 일상생활 속에서 출판사, 기업의 정책결정 등의 사례를 들면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공유,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 조직, 위계적 조직이 아닌 균형적 직군, 참여계획을 통한 할당, 계급 지배가 아닌 참여적 자율관리” 등의 6가지 기본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역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도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주택과 학교, 병원과 같은 공공기관, 대중교통 등에 대한 예산의 배정과 집행에 있어서 주민들이 총회에 참여하여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마이클 앨버트는 이 참여예산제도 큰 맥락에서 파레콘과 함께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개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운동들을 평가해볼 때 항상 아쉬웠던 것은 국제주의적인 시각의 부족함이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그토록 만들고자 했던 것은 또 다른 브라질도, 또 다른 유럽도 아닌 또 다른 ‘세계’였다. 이를 위해 세계사회포럼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전세계적 연대를 모색하는 장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마이클 앨버트 역시 <파레콘>에서 “새로운 국제적 규범과 제도를 수립함으로 세계적 차원의 정의를 구현하자”고 주장한다.


통제불능이 돼버린 초국적 자본이 무한히 확장하고 사회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는 현실 속에서 ‘이윤이 아닌 인간을’ 보다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의 끝, 그 이후의 대안을 위해서는 전세계 민중들의 수평적 연대, 자본의 세계화가 아닌 연대의 세계화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국의 민중들이여, 단결하라.

 

최성진 편집위원  coolweeke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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