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젠 창조성을 고민할 때

 


류현주 / 부산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

 

지난 2000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시도했던 ‘하이퍼텍스트와 문학’ 프로젝트는 이어쓰기를 이용해 시의 숲을 만드는 것이었다. 풀을 소재로 한 시에 총 1백55명의 시인들이 수형도 모양으로 텍스트 가지치기를 만들고 나서 방문객 모두에게 각자가 쓴 텍스트를 링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시어에 링크를 걸어 놓아서 글을 읽는 독자가 시상은 생각하지 않고 그 단어 자체에서 연상되는 자신의 글만 이어 붙임으로써 마치 말 이어가기 게임을 하는 듯한 결과만을 남겼다는 점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 눕는다”로 시작한 시가 왜 마지막 링크 텍스트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이미지로 남게 됐는지 이해할 사람은 이 사이트에 글을 이어 붙인 몇 백 명 방문객들 중 ‘매트릭스’라는 단어를 썼던 마지막 사이트 방문자뿐이다.


또 지난해에 정보 통신부에서 지원한 ‘디지털 구보 프로젝트’는 문학의 본질에서 벗어나 단지 텍스트를 멀티미디어 기술로 화려하게 포장한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하이퍼 문학이든 인쇄문학이든 독자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관심을 갖는 것은 사건의 전개이며 그 방법과 내용이 어떠하든 독자들은 내러티브의 형성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주요한 사건들에 링크를 걸어서 이야기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그 사건 속에서 나오는 배경이나 사소한 정보들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이 국수를 먹는 장면이 나오면 국수집 웹사이트를, 등장인물들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그 인물이 신고 있는 유명 메이커 운동화 회사 사이트를, 그리고 대화에 TV 시트콤이나 영화가 나오면 그 드라마와 영화의 공식 홈페이지를 링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과연 소설을 읽는 독자가 국수집과 신발, 드라마ㆍ영화 사이트를 방문해 어떤 풍부한 문학적 경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일단 이런 사이트들을 방문한 독자는 결코 다시는 이 구보 이야기 사이트로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구보 이야기를 읽기 위해 이 소설 사이트에 들어갔던 방문객들은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러 웹사이트들을 지나쳐 가는 한 경유지로서만 이 소설 사이트에 잠시 머물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하이퍼링크는 단지 목적없는 웹 서핑을 위한 여러 문서들의 조합일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낯설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컴퓨터 도구와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것 못지 않게 그것이  자신의 창작에 어떠한 매력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선형적인 인쇄 창작물과는 다른 비선형적 내러티브 전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쇄 문학의 내러티브와 전자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내러티브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독서냐 혹은 탐험이냐의 문제가 된다. 단어, 문장, 문단, 페이지 등이 선형적으로 이뤄진 텍스트를 선형적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하이퍼링크들을 비선형적으로 클릭하면서 ‘내용 파악’이 아닌 언어의 숲에서 ‘링크 탐험’을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과연 하이퍼텍스트 속에서 탐험하는 독자들에게 문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문학 창작자 입장에서는 손쉽게 책장을 넘겨가며 이야기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글읽기의 재미를 왜 정신없이, 또 끊임없이 링크들을 클릭하며 헤매 다녀야 하는 하이퍼 글읽기로 바꿔야 하는지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새로운 것이어서 또는 멋있게 보여서라는 이유만으로 독자들을 정신없게 만드는 컴퓨터 문학은 지양돼야 한다. 모든 허구적 내러티브 창작자들과 향유자들이 이 ‘왜’를 명쾌히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문학 형태는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