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맑스로 돌아가다


 

재미있는 일이다. 지난 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대학원신문을 다시 보며 알게 된 사실은 학술ㆍ문화ㆍ사회면의 주제들이 시기별로 함께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80년대 중후반에는 문학이든, 노래든, 운동이든 모든 기사가 노동자계급과 국가권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정부주도로 재야ㆍ학생ㆍ노동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던 시기였던 만큼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의 학계는 온통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달콤한 서구담론의 향연에 빠져든다. ‘문학의 죽음’과 ‘인문학의 위기’, ‘예술의 죽음’과 ‘역사의 종말’, ‘이데올로기의 종언’ 등 모든 것이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 학계의 지적 고민은 ‘포스트 증후군’에 감염돼 버린다. 심지어 93년 <학술시평>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포스트 맑시즘의 세부적 내용에 대한 더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미 많은 논의가 있어왔고 또 그렇게 계속 진행되면서 누적적으로 생산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포스트주의의 계몽적 이성에 대한 반발과 기존 질서에 대한 새로운 견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후 90년대 중반에 소위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문화에 관한 다양한 담론과 분석들이 활발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문화에 관한 이론적·과학적 접근을 표방한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의 출간과 활동은 한국에서 ‘문화연구’라는 학제간 연구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계기가 된다.


97년. 한국의 거품경제가 김영삼 정권과 함께 사그러들고,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체제로 들어가게 된 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분과를 막론하고 학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경제학자도 사회학자도 인문학자도 입모아 ‘신자유주의’의 야수성을 비판한다.


동구의 몰락과 유럽의 통합 움직임, 남북문제의 심화와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환경공해 등 불안과 우울 속에서 맞이한 21세기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설명을 요구했고,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다시 논하기 시작한다. 사회에 유행처럼 번져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성과에 대한 검토와 한계에 대한 반성 속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 ‘근대’ 조차 완수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탈근대를 논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의견과 근대와 탈근대는 공존하는 것이며 이미 탈근대에 진입해있다는 의견은 다각도의 논쟁구도를 이루어낸다. 최근 논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학계의 모습에 비해 당시의 학계는 가히 논쟁의 각축장이었다.


사회ㆍ문화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새로이 등장한 ‘대중’의 개념에 관한 논의는 곧 ‘다중’에 관한 논의로 발전하고, ‘지식인 위기설’과 함께 지식인의 앙가주망이 지식인의 새로운 덕목처럼 요구된다. 초국적 자본의 흐름과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국가에 관한 논의는 제국으로 옮겨가고 대항제국의 가능성과 혁명에 대한 새로운 탐색 속에서 맑스가 되살아난다. 곤경에 처한 학계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돌아온 맑스가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인간들의 자유로운 연합체인 꼬뮨을 형성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게 될 것인 지는 앞으로 두고봐야 할 일이다.

 

 

최영화 편집위원  sobeit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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