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

최근, 민중가요의 댄스가요(“사계”), 힙합(“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버전이 등장했다. 지난 월드컵, 거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결전갗로부터 월드컵 응원가로, TV 다큐멘터리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동지갗로부터 태극전사 예찬가로 등록되었다. 민중가요 혹은 정치성을 담지한 음악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민중가요계의 선각자였던 안치환이 ‘열린 음악회’의 박수부대 앞에 서는 것이나, 윤도현이 신세대 저항적 록의 기수이면서도 상업적 카드 광고와 공익적 월드컵 노래의 대표자라는 이중소속자라는 것 역시.
그렇다면 이런 음악(가)들은 과연 정치적인 음악(가)일까? 대답은 예/아니오 둘 다 가능하다. 이는 ‘정치(적)’라는 의미에서 비롯된다.
흔히 국가 및 방송기구 등의 개입 및 검열을 정치적 영역으로 받아들이는데, ‘대중음악(인)이 정치적이다’라고 말할 때도 역시 그렇다. 우리는 그간 질곡과 압제의 역사를 통과하면서 이런 현실에 적극적인 발언, 참여를 하는 음악(진영)이 정치적이라고 받아들였다. 정태춘은 사전심의제 철폐의 일등공신이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그러나 넓은 혹은 복잡한 의미에서 대중음악이 생산 및 소비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정치적이다.

이런 거시적, 컨텍스트적 관점에서 대중음악의 정치는 사회 구조와, 경제, 문화, 정치(좁은 의미)적 힘과 관련되어 결정된다. 70년대의 컨텍스트 상, 김민기는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다. 80년대를 통과하자 민중·민주·민족운동의 시대, 사회과학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민중가요라는 흐름이 대학가 주변을 휩쓸기도 했다.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동시발생적, 자생적 음악 운동인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 운동(쿠바의 Nueva Trova, 브라질의 Musica Popular Brasileira, 아르헨티나의 Nuevo Cancionero Argentino 등 이명동질(異名同質)의 운동이다)이나, 미국의 모던 포크 리바이벌들과 비교되곤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면서 계급의 정치가 지배했던 시대는 가고 세대, 성, 인종 등의 정치의 시대로 이월되었다.

물론 이런 대중음악의 정치사에 대해 모두 손을 들어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계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의 권력화와 미화에 급급했고 다른 영역들(세대, 성, 인종 등)에 대한 다양성, ‘황희정승식’ 등가성을 인정하는 사태를 낳았다.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이란 말은 일종의 악세사리 같은 것, 나쁘게 말해 고리타분한 것이 되었다. 더군다나 문화/예술의 시대로 군림한 1990년대에 록 음악이 민중가요의 정치학을 대체했을 때 정치적 음악, 청년 저항의 음악이 지나치게 낭만화된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시대가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곧 어떤 음악의 의미는 전복된다. 재/탈영토화가 발생하고 새로운 종류의 정치성들이 음악에 접합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음악의 종류/스타일이 생성되거나 기존의 음악이 다른 의미를 얻고, 사회나 개인, 혹은 특정 공동체에 어떤(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며, 대중음악의 정치성(혹은 그의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 때문에 이 글의 서두에 제기되었던 음악의 정치성 유무에 대한 판단은 유보될 것 같다.

물론 지금 이곳은 그렇게 자유로운 곳은 아니다. 또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한국에서 음악인들의 정치적 태도와 발언은 한정적이거나 소수이다. 서양에서 각종 문제(기아, 환경, 에이즈 같은)에 대응하는 국제 연합공연으로, 한때 풍미했으나 음악과 정치 사이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구호 공연(Live Aid) 같은 형태조차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검열문제로 청문회가 열렸을 때, 많은 뮤지션들이 적극 참여했다는 일화는 시사적이다. 너무 도덕적인 결론 같지만, 뮤지션/감상자가 적극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고 듣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공동의 노력(이것을 음악의 정치적 영역에 놓을 수 있다면)이 필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지선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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