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신문사에서는 본지에 대한 평가작업을 매학기 종간호 지면을 통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원우들의 다양한 평가와 이를 통한 개선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평가는 대학원신문과 여러분 사이의 일상적인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소통을 위해 언제나 지면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신문자체에 대한 비평에서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 원우 여러분들의 다양한 글쓰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편집자주>


풍부한 글쓰기, 치밀한 취재 신선…편집자적 마인드 강화 필요

오창은 / 국어국문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하다. 나는 대학원신문의 이미지를 음미하며 즐기는 편이다. 이미지는 정리되고 분석되기 이전의 상태이고, 어떤 뭉텅이로 있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분석해서 보여주고 해석하면 영 재미가 없다.


  대안성/안정성/전통성, 대학원신문에 관한 몇가지 이미지들

  하지만 감히 앞에서 쓴 ‘독특하고도 강렬하다’는 표현에 값하기 위해 나만의 이미지에 관한 보자기를 풀어헤쳐야 할 것 같다.

  이미지 하나. 주의 깊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학원신문에는 ‘광고’가 없다. 신문에 ‘광고’가 없다는 것은 환상적인 즐거움이다. 그렇게도 열망하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가? ‘독립’은 결국 확고부동한 편집자율권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체로서 대안매체의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둘. 대학원 신문은 한국 대학원 사회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신문이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경희대·이화여대·동국대 등에서도 대학원 신문이 있지만 월간 발행도 버거워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중앙대 대학원 신문은 격주로 끊임없이 교정전역에 배포되고 있지 않은가? 그 이면에는 연구자이면서 신문제작자이기도 한 편집위원들의 고단한 피로가 켜켜이 쌓여 있음은 물론이다.

  이미지 셋. 편집이 안정적이고 논점에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편집의 태도가 대학원 신문의 전통으로 정착돼 있다. 이는 창간 16주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무게가 아닌가 싶다. 나름의 신문제작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고, 매학기 편집위원의 개편이 부분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전통의 계승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 신문의 평가를 앞둔 첫머리치고는 너무 포장지가 거창한 듯도 싶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청탁받기 이전에도 내가 지니고 있던 느낌들이었다. 대학원 신문의 역사성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은 우선 편집위원들이 그마만큼의 책임감을 느꼈으면 하는 것과 독자들이 대학원신문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신문 평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평가자 스스로는 보다 허심탄회하게 1999년 하반기 대학원 신문을 바라보기 위한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매체비평’의 어려움

  비평의 대상이 ‘매체’(media)일 때 평가자는 자신이 복잡미묘한 위치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매체는 대상과 대상 사이를 매개해주는 ‘촉매’ 혹은 ‘매질(媒質)’이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통한 촉매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는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사건의 주체는 아니다. 그래서 언론 매체의 경우 ‘대상과의 거리두기’ ‘객관성’ 등이 끊임 없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언론 매체를 비평하는 행위는 ‘거리두기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에 가까운 글쓰기일 것이다. 마치 말장난 같이 되어버렸지만 그마만큼 대상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 때문에 언론매체에 접근할 때는 보통 지면, 제작주체, 독자, 조직, 컨텍스트인 사회와의 관계 등으로 영역을 분리한다. 그런 다음 그 중 한 대상을 선정해 영역을 좁히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언론 비평전문가인양하는 태도는 벗어버리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중심으로 지면평가와 신문제작 주체 혹은 과정을 넘나드는 리좀(rhizome)적 비평의 형식을 취해보자.

  대학원신문사 편집위원은 집필자이면서 기자이고, 편집자이다. 모두 동일한 개념으로 비춰지지만 역할이 다르다.

  집필자는 편집위원이 스스로 자신의 전공이나 사유에 기반해 원고를 작성하는 생산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원재 편집위원이 문화비평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쓴 ‘디지털 문화의 지도그리기’(131호)가 생산적 글쓰기의 예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글쓰기를 탁월하게 소화해내며 빛을 발하는 이가 ‘시네마고라(130호, 132호)’를 쓸 때의 이상용 편집위원인 것 같다. 영화학이라는 이상용 편집위원의 전공 영향도 있겠지만 ‘영화’ 관련 기사나 서평관련 기사(부킹 앤 북)를 쓸 때 글속에서 드러나는 생산적 힘이 돋보인다. 대상과 대상의 자유로운 건너뛰기나 단정적 어투가 거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상용 편집위원의 박식함은 때로는 독자들을 주눅들게까지 한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글쓰기의 긴장이 떨어져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예를 들어 ‘영화의 바다에서 띄우는 편지’(131호)나 ‘늦가을 행사들을 사이버 공간에서 난도질하다 혹은 한 수 배우다’(132호)의 경우는 형식의 파격이 놀라운 반면 글의 밀도가 결여돼 있다. 또 ‘헐리우드가 앓고 있는 세익스피어에 대한 중증적 사랑’에 대한 아이템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129호와 130호에서 중복돼 나타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집필자/기자/편집자

  사실, 그간 대학원 신문에 집필자는 있었지만 기자는 드문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 대학원 신문에서 편집위원이 아닌 기자를 발견한다. 김상철 기자(편집위원)는 독자들에게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기사를 쓴다. 예를 들면 김상철 기자가 도서관 현황을 취재하면서 구독 중지 상태에 있는 해외 저널을 지적한다든지 “계간 사상은 CALIS화면에는 구독중이라고 나오나 97년 마지막 호만 있을 뿐”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특히 이번학기에 신설된 김상철 기자의 고정꼭지와 같은 ‘他大之石’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

  건국대·고려대·이화여대 출판부와 중앙대 출판부를 비교하면서 폐지의 부당성을 알린 것(129호)라든지, 재학생에 대한 연세대 세브란스와 중앙대 부속병원의 서비스 차이에 대한 비판(132호), 학부시험기간에도 대학원생 도서대출이 가능한 한양대·경희대 사례 보여주기(131호) 등은 성실한 취재가 보여줄 수 있는 희열의 극치였다.

  또 김성희 편집위원의 ‘민주노동당(준) 권영길 대표 인터뷰’(129호)도 시의성이 맞아 떨어진 기자적 아이템의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기자적 근성은 아이템에 대한 감각이기도 한데, 뉴라운드, NGO 세계대회 등도 적절한 시기에 배치됐다.

  편집자적 마인드의 결여

  현재 대학원 신문사 편집위원들에게 결여돼 있는 것은 편집자적 마인드이다. 편집장이 모든 편집을 총괄해 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개별 면을 담당하고 있는 편집위원들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편집자의 권한을 집행해야 한다. 편집자의 권한은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필자들에게 행하는 정당한 것이다. 청탁의도와 다른 원고가 들어왔을 경우, 편집자는 과감히 수정요청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싣지 않는 결단도 필요하다.

  신광영 교수의 시론 ‘正當한 政黨’(128호)과 김종건 원생의 ‘정치권의 내집 마련, 창당?’(128호)은 다른 듯 하지만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우는 지면의 경제성과 아이템의 다양성을 위해 바로 조정에 들어갔어야 했다.

  또 한 학기를 가로지르는 야심찬 학술기획이었던 ‘과학기술과 사회변동’의 경우 청탁의도 혹은 기획의도와 다른 글이 들어왔을 경우 필자에게 당연한 권리로 수정요구를 했어야 했다. 물론 관점 차에서 오는 오해일 수도 있지만 박병상 환경연구소 소장이 쓴 세 번째 ‘과학기술과 생태주의’(130호) 역시 전체 기획의 맥락에서 어긋나 있는 듯이 보이는 글이었다.

  또 백욱인 교수의 ‘전자감시사회의 새로운 저항운동’은 실천적 지평과 현실 가능한 저항운동의 영역을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이전 기획글과 중복되면서 당위만 강조한 측면이 있다. 편집자들은 이러한 글들에 대해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신문의 역사가 오래되면 스타일이 굳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시기를 흔히 매너리즘의 시대라고 하던가? 대학원신문 지면 편집이 점차 고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1면 편집이 한 회만 제외하고 모두 동일했다. 편집도 일종의 미학이다. 한 학기 신문에 편집 스타일에 대한 실험정신이 드러난 경우가 단 한번(133호 6면)이었다는 것은 심각하다. 스타일은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 보도기사의 가치를 죽이면서 내리눌리는 듯한 2면 편집은 시급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로 세로 기둥편집을 활용하거나 다양한 꼭지분할 방식을 개발하는 등의 방안도 적극 모색돼야 한다.


  지면 편집의 고정화, 지면의 변화가 모색돼야

  이번 학기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꼭지의 이름들이었다. ‘Pros & Cons’ ‘Old & New’ ‘시네마고라(Cinema+Agora)’ ‘부킹 앤 북’ ‘브리꼴라쥬(Bricolage)’ 등등. 발랄한 느낌과 모던한 감각을 살리기 위한 시도인 듯한데 신선하면서도 조그만 아쉬움이 인다. 만약 이 꼭지 이름들 중에 순수 우리말 꼭지 한 두 개만 배치되었더라면 흡족했을 텐데.

  과거/현재/미래는 개념상의 구분일 뿐 시간의 표면은 미끈하게 연결돼 있다고 했던가? 이미 지난 신문에 대해 수고로이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긍정/부정에 대한 개념적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학원신문의 역사성이라는 미끈한 표면의 ‘지속성’을 위한 한가닥 도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음 학기에도 대학원신문이 보다 많은 원우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방학중 편집진의 노력이 중요하다. 방학중 장기편집 계획이 주도면밀하게 준비된다면, 집필자이며 기자이고 편집자인 편집위원의 숨쉴 공간은 훨씬 넓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원 신문사 편집위원들이 진짜 바쁜 시기는 신문제작 기간이 아니라, 장기편집계획을 준비하는 방학중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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