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공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혹시 아쉽게 지하철을 놓치게 될까 걱정스런 맘에 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지하터널이 나오면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재촉한 걸음이 무안하다. 그곳에는 기다림만이 있을 뿐이다. 어색한 기다림 뒤에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한다.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객차 안으로 걸음을 들이민다.
지하철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없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지하철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제각기 고개를 떨군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피곤을 달래보려 얼굴을 떨구고, 서 있는 이들은 신문과 책 속으로 얼굴을 떨군다. 어쩌다 고개를 뻣뻣이 세운 이들이 있다. 광고를 보고 있다. 그곳은 시선의 마주침이 없다. 그래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주침은 없고, 피로함만이 떠도는 지하철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공간이다. 멈춤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학원생의 강박이다. 멈춤에서 벗어난 이동의 공간은 그 강박에서 자유롭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 속에 시선을 고정하고나면 그곳은 더 이상 지하철이 아니다. 눈과 귀가 사라진 그 곳에는 나만의 작은 공간이 형성된다. 그 곳에서 나는 조용히 음악과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책을 준비한다. 오늘도 나는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 있는 곳, 지하의 불빛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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