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월 2일 일명 ‘도롱뇽 소송’이라고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대법원은 “공사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번 재판 진행과정에서는 05년 진행된 민겙?환경영향공동조사의 결과가 적극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리고 터널과 지하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대한지질공학회의 조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법원은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일본의 ‘우는 토끼’소송이나 미국의 ‘빠리야새’소송, 플로리다 ‘사슴’소송, 그레이엄 산의 ‘붉은 다람쥐’ 소송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현대 법조계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자연의 권리’를 저버린 우리 법조계의 현실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법조계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법정은 지난달에 강정구 교수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으며, 3월에는 새만금에 사업 재개를 명령했다. 또한 05년 카드 발급을 남발한 카드회사에 대한 언급 없이 카드 대금 연체자에게 사기죄를 적용하였고, 04년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인권이 배제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우리 법조계가 기업이나 정치 범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04년에 있었던 참여연대의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 무효청구 소송은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으며, 현재에도 이건희 같은 거물급 경제 인사는 기소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현재의 상황은 법이 마치 사회 특정 계층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기존의 법이 경제적겵ㅔ÷?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해 복무하는 조항들을 여전히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이 일반적인 사회 정의와 위배될 때는 그 법을 고치거나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내세워 인권과 생태와 같은 새로운 가치를 배척한다면 그 사회는 도태되고 만다. 변화하는 사회에 변화하는 가치를 보지 못하고 기존의 가치와 법만으로 사고하는 보수적인 우리 법조계는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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