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획

윤인진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국제이주와 시민권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캐슬은 국가간 인구이동이 일상화되고 보편화된 현대를 이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유엔은 02년 기준으로 1억 8,500만 명의 인구가 자신의 출생국을 떠나 외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국제이주자들은 이민, 노동, 망명, 결혼, 유학, 방문 등 다양한 목적으로 모국을 떠나 거주국에 살면서 양쪽 국가에 중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유엔은 “1년 이상의 의도적 체류를 동반한 국제적 이주”를 국제인구이동으로 정의하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한국은 이민이 허용되지는 않지만 이미 다수의 실질적 이주자들이 살아가는 이민국가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국내의 저출산과 고령화를 감안할 때 외국 인력의 유입은 불가피해 보이고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01년의 유엔 보고서는 한국이 현재의 경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50년 기간에 총 1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글로벌 시대에 국가간 인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06년 3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80만 명을 넘었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에는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인구의 2%에 달할 정도로 증가한 외국인은 단지 외국인력 수급이라는 경제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혼, 가족, 귀화, 시민권, 교육, 건강 및 의료, 복지, 공동체, 동화, 정체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사회현상이 되었다. 작년 10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아랍계 청년들에 의한 폭동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종 및 민족, 종교, 출신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들을 다수자들이 배제하고 차별했을 때 그 비용은 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다문화주의와 사회통합
우리에 앞서 대규모의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한 독일, 영국, 미국 등의 선진국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정주화, 난민신청, 불법체류자, 외국인과 통합 및 평등의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이런 사회문제들에 부닥치면서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주는 현대 국제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제하고, 이주로 얻게 되는 주요 이익을 ‘기술 향상, 경제활동 확대, 문화의 다양성, 세계와의 연계’로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주로 인해 사회의 행복과 경제적 번영이라는 긍정적 기여를 지속하기 위해 이주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다양성을 통합으로 성취하려는 국가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이들 선진국가들이 겪는 사회문제들을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외국인력의 수급과 활용, 국제결혼 배우자의 사회적응과 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과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민족 모자이크라고 불리는 캐나다에서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인 사회통합의 이념으로 삼고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국민정체성과 일체감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문화주의는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려는 사회적 이념을 지칭한다. 캐나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이념을 단지 구호나 수사의 차원에서 표방한 것이 아니라 ‘고용평등법령’과 ‘다문화주의법령’ 등의 구속력을 가진 법과 제도를 통해 이민자들과 소수인종·민족집단들에 대한 어떤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지방정부들은 토론토의 그리스계 음식축제인 ‘Taste of Danforth’와 민족문화축제인 ‘Carnivals’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지원하여 여러 민족집단들간의 교류를 증진하고 서로의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문화주의적 환경에 적합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학습하도록 하였다. 만약 학생들이 타민족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인종적, 민족적 욕설을 하거나 차별행동을 하게 되면 교사들로부터 심하게 처벌받는다. 이렇듯 문화적 민감성과 에티켓이 사회통합의 덕목으로서 정규교육에서 중요하게 교육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인종·민족·문화적으로 더욱 다원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다원성 속에서 공통의 국민정체성과 연대감을 이끌어 내고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역량을 강화하여 사회발전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가장 큰 과제이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둘째, 소외계층과 소수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인종, 민족, 출신국, 종교, 문화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여 형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 및 고용 분야에서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 이들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사회통합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다문화적 가치와 분배정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교육을 통해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문화적 민감성과 예절을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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